-모네 ‘해돋이, 인상’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거의 뭉개진 것같이 자유로운 붓터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대상에 따라 세심하게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앞쪽의 파도는 짧게 끊어지는 터치로, 뒷편의 공장 굴뚝들은 가늘고 날카로운 수직선으로 처리했다.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빛이 물들인 하늘에는 불규칙적이고 두터운 선이 가로누워 있다. 둔탁해 보이면서 강렬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짧고 거칠게 물 위에 드리운 태양의 잔영 덕분에 앞으로 다가오는 파도의 일렁임이 생생하다. 그림 전체가 전혀 사실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실제로 보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든다.  

미술사에 ‘인상주의 l’impressionnisme’라는 말이 생기게 한 작품, ‘해돋이, 인상’을 볼 수 있는 곳은 파리 16구에 위치한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이다. 인상주의 회화로 유명한 파리의 오르세, 오랑주리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전세계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이다. 폴 마르모탕(Paul Marmottan, 1856-1932)이 자신의 컬렉션과 저택을 1932년 미술 아카데미에 기증하여 2년 후 ‘마르모탕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나폴레옹 제1제정 시대와 중세 및 르네상스기의 다양한 예술품 위주였다가 여러 소장가들의 기증으로 작품들이 점차 다양해지던 차에, 1966년 모네의 아들 미셸 (Michel Monet, 1878-1966)이 개인 소장품 전체를 유증(遺贈)하면서 박물관 이름에 ‘모네’가 추가된다. 별채의 지하 1층에 모네의 94점의 그림, 29점의 데생, 8권의 데생집, 사진, 편지 등의 개인적인 물품뿐 아니라, 모네가 소장했던 동료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의 르아브르(Le Havre) 항구를 그린 ‘해돋이, 인상’은 1874년 사진 작가인 나다르(Nadar)의 아틀리에를 빌려 열린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비평가 르루아(Louis Leroy)가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비평문에서 “인상? 확실하다. 나는 정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인상적인 것은 틀림없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안일하게 그리다 만 수준이다. 초벌로 그린 벽지도 이 바다 그림보다는 낫다.”라고 악평을 했다. 다소 경멸적으로 쓰였지만 ‘인상주의’와 ‘인상주의자’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다. 

인상주의가 20세기 현대 미술을 싹 틔우고 발전하게 한 공로는 절대적이다. 이 화풍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1820년경,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는 야외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빛의 변화를 쫓기 시작했다. 10여년 뒤, 바르비종 근교의 시골 풍광과 퐁텐블로 숲을 그리는 ‘바르비종파’는 신화적이거나 우의(寓意)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풍경화가 주요 장르가 되는 길을 열어놓았다. 주제적 혁신은 제2 제정기에 근대화된 파리도 한몫해서 기차여행과 피크닉, 오페라를 즐기는 시민들의 삶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튜브 물감의 발명, 색깔을 섞지 않고 병렬하여 캔버스를 훨씬 밝게 하는 색채 분할 기법의 창안, 대담한 조형공간을 보여주는 일본 판화의 영향 속에 젊은 화가들은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 전시와 전통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1874년 첫 전시 이래 1886년까지 총 8번의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쿠르베와 마네가 각각 1855년과 1867년 만국박람회에 자신들의 그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인 전시회를 열었듯이, 공식 살롱에서 번번이 거절당한 화가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자유롭게 자신들의 작업을 펼쳐 보여줄 수 있었다. ‘인상주의자’로 불리며 함께 전시를 했지만 인상주의는 하나의 일관된 양식이나 사상을 내세우는 운동 혹은 사조는 아니다. 초기에는 함께 야외작업을 하며 엇비슷한 작풍을 보이기도 했다. 가령 모네와 르누아르는 1869년에 식당 겸 피크닉 장소인 ‘라 그르누이예르’에서 같은 구도로 흡사한 그림을 그린다. 이후 르누아르는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실내의 인물화나 고전적 기법으로 돌아간다. 두 화가뿐 아니라 전시회에 참여했던 드가, 세잔, 카유보트, 모리조, 고갱, 쇠라, 시냑 등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여전히 전세계의 박물관과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을 매혹하고 있다.  

‘해돋이, 인상’이 그려진 르아브르뿐 아니라 에트르타, 옹플레르, 루앙 등, 노르망디 지방은 인상주의의 성지(聖地)와도 같다. 1883년에 모네는 그 지역 남부에 위치한 지베르니(Giverny)로 이사한다. 연못과 정원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가꾸면서 끊임없이 수련(睡蓮)을 그리며 반평생을 보냈다. 이 매력적인 정원에 갈 기회가 있다면 갖가지 꽃과 흐드러진 수양버들, 수련으로 가득한 연못을 가로지른 초록색 다리를 여전히 볼 수 있다. 지베르니가 그림을 현실로 보여준다면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은 현실을 그림으로 재현해 준다. 사방에 둥글게 전시된 그림 가운데 앉아 빛 속에서 분할되는 색채를 보다 보면 이 세상 바깥 어디엔가 있는 듯한 기분에 잠기게 될 것이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해돋이, 인상 Impression, Soleil levant’(1872, 캔버스에 유채, 48X63cm,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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