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현악사중주 14번 (String Quartet No.14, Op.131)

4년 전 이맘 때 쯤 초대장을 하나 받았다. ‘안동림 교수 추모음악회’. 등골이 오싹했다. 직계가족들만 모여 장례를 치른 후, 고인의 유언에 따라 생전의 지인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압구정동 풍월당 감상실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번거롭지 않게, 소박하나 따뜻하게’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화환이나 조의금은 접수하지 않았다. 80여 명의 초청객들은 홀 한 귀퉁이에 전시된 안 교수님의 저서들과 유품들을 둘러보고 제공된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 조용한 분위기에서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감상했다.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

30년 전 처음 출간된 ‘이 한 장의 명반’은 안동림 교수의 역작이며 베스트셀러다. 클래식음악 관련 서적 중 제일 많이 판매된 책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가까이 두고 수시로 읽었고, 읽을 때마다 그 분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10년 전인 2008년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안 교수님을 만났다. 방송국에서 은퇴하신 곽 선생님, 사업가이자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던 장 선생님, 이렇게 4명이 ‘기해사’라는 친목모임을 결성했고, 매달 한 번 식사를 함께하며 얘기를 나눴다. 안 교수님도 이 모임에 애착을 많이 가지신 듯했다. 거동이 불편하실 때도 모임엔 항상 참석하셨다. 2014년 4월 모임은 댁에서 가까운 성북동의 한 칼국수집에서 가졌다. 그 후 연락이 끊겼다. 전화는 불통이었고 주변의 누구에게서도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7월에 추모음악회 초대장을 받은 것이다.

‘기해사’ 모임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음악이었다. 단순한 친목모임이었기에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얘기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하며 철학적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음악 얘기로 되돌아갔다. 모두들 베토벤을 좋아했다. 특히 장 선생님은 베토벤 광팬이었다. 거의 매일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듣는다고 했고, 14번 사중주(String Quartet No.14, Op.131)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어느 날 모임에서 장 선생님이 작심한 듯 논쟁거리를 끄집어냈다. “왜 7악장으로 구성했을까?” “중간에 쉬지 않고 끝까지 계속 연주해야한다고 한 이유가 뭘까?” 작곡자인 베토벤이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남겨놓지 않았기에 누구도 속 시원히 해답을 제시하진 못했다. 안 교수님이 정리했다. “혹시 베토벤이 천당에 계시다면 내가 가서 물어보리다. 나중에 여러분도 천당에 오신다면 알려줄게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작품세계는 일반적으로 3단계, 즉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 짓는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34세에 작곡한 ‘영웅교향곡’으로부터 시작되는 ‘중기’에는 그 이전 어떤 작곡가에서도 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으로 점철된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50세 이후 ‘후기’에 이르러서는 그마저도 뛰어넘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했으며,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현악사중주’로 대표되는 이 ‘후기’ 작품들은 낭만주의의 지평을 연 위대한 창조물로 남아있다.

베토벤은 전 생애에 걸쳐 총 16곡의 현악사중주를 남겼다. 30세 이전 ‘초기’의 6곡, ‘중기’의 5곡, 그리고 1824년 54세에 ‘합창교향곡’을 발표한 이후 57세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작곡한 5곡의 ‘후기 사중주’들이다. 현악사중주로 연주하는 ‘대 푸가’와 함께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이 ‘후기사중주’들에서는 이전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세계가 펼쳐진다. 형식은 자유로워졌고 악상의 전개는 파격적이며, 깊은 성찰과 철학적 사상을 담아 마치 작곡자의 인생 전체를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시점에서 만들어 낸 지성의 산물이며 위대한 유산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베토벤 자신이 최고의 현악사중주라고 지칭한 ‘14번 사중주(String Quartet No.14, Op.131)’는 다른 ‘후기사중주’들에 비해 보다 더 자유로운 형식 속에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 작곡자의 의도가 보여진다. 전례 없던 7개의 악장으로 구성했지만 악장 사이를 쉬지 않고 계속 연주하게 돼있다. 베토벤이 왜 이처럼 현대음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파격적인 형식의 사중주를 작곡했는지는 기록을 남겨 놓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 ‘14번 사중주’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마지막 사중주’를 보고 나면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다.”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인용한 T.S.엘리엇의 난해한 시 ‘4개의 사중주’ 중의 한 구절이다.

안 교수님과 장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 음반은 서로 달랐다. 한 분은 부쉬 사중주단 음반을 첫 손에 꼽았고 다른 한분은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음반만을 고집했다. 내가 즐겨 들었던 연주는 과르네리 사중주단 음반이다. 대학생 시절 처음 구입해 들었던 음반이라 애착이 많았지만 잡음이 점점 심해져 결국 폐기처분했다. 요즈음 듣고 싶을 땐 여지없이 부다페스트 음반을 꺼내든다. 역사적인 명연주로 손꼽는 부쉬사중주단 연주도 좋지만 80여 년 전 녹음이라 음질이 열악한 점이 아쉽기 때문이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4 in C# minor, Op.131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영상보기 클릭 => 
https://www.youtube.com/watch?v=jJP0-uvI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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