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가 세밀하게 살린 몰리에르 희곡의 진수'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배우 겸 극단장이었던 몰리에르는 희극으로 고전주의를 혁신한 작가다. 부르주아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빠리에서 극단을 차린 몰리에르는 처음에 비극 배우를 꿈꾸었으나, 공연은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후 13년간 주로 소극을 포함한 희극 공연으로 크게 인기를 끌어 희극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웃고 때리고 저속한 욕설과 농담이 난무하는 희극은 당시 천박하다고 비난받기 일쑤였다. 더구나 막간극처럼 공연되며 가벼운 여흥쯤으로 취급되던 소극은 당시 공연도 잘 되지 않던 쇠락한 장르였다. 그러나 몰리에르에게 소극은 희극의 출발점이었고, 그의 예술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토대였다. 

최근 출간된 창비세계문학 59번 '상상병 환자'는 그의 마지막 희극 작품이다. 수록작은 귀족이 되고 싶어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을 그리며 대희극의 성과와 발레희극의 축제적 성격을 접목시킨 '부르주아 귀족', 부조리한 결혼 관습에 맞서 자유 로운 연애결혼이 승리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은 '스까뺑의 간계', 당대 의학을 풍자적으로 비판하며 청춘과 사랑을 예찬하는 희극 '상상병 환자' 총 세 작품이다. 이 세 작품 모두 몰리에르의 완숙기 대표작들로 현실의 어리석음과 악덕을 상상과 축제를 통해 교정하고자 하는 몰리에르의 예술관을 잘 보여준다. 몰리에르 전공자가 직접 번역을 해 몰리에르 희곡의 행간과 문학적 뉘앙스를 세밀하게 살렸다는 평이다. 

옮긴이 정연복 서울대 불문학과 박사는 “몰리에르는 언제나 민중의 친구였다. 그는 궁정 축제용으로 만든 발레희극을 민중의 축제로 재탄생 시켰다. 기존 체제를 찬양하고 공고하게 하는 축제가 아니라 그것을 뒤집고 패러디하면서 현기증 나는 환상의 놀이를 벌여 사람들을 그곳으로 초대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 묶인 세 희곡 모두 몰리에르가 직접쓴 판본인 초판본을 번역한 것으로 당시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 속으로>
“저는 당신의 결론에 동의 못 해요. 신분의 차이가 큰 결혼은 수많은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어요. 사위가 딸에게 처가 흉보고, 손자들이 외할머니를 창피해할 수 있지요. 딸이 거창한 귀족 행차로 친정에 올 때 우리 이웃에게 경황이 없어 인사를 놓치기라도 하면 즉시 나쁜 소문이 쫙 퍼질 겁니다. (…) 딸아이와 결혼해서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위, 또 장모가 ‘자네, 오늘 이리 와서 같이 식사하세’라고 허물없이 말할 수 있는 사위를 원해요.” 
ㅡ부르주아 귀족 3막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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