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싸워 이기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아군의 수가 많으면 당연히 유리할 것이고, 탱크 전투기 등 양질의 전쟁물자는 승리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고려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적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해상으로 침투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선 해군이 주력이 돼야 한다. 전투기 등의 항공지원이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육군은 적이 상륙했을 때에나 활용할 수 있으니 마지막 고려요소가 된다. 비행기로 공습하는 적을 소총과 탱크로 방어하기 보다는 비행기와 미사일로 막아야 한다.  병과 싸울 때도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병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고 싸우면 백전백패다. 

병인을 파악하는 게 바로 진단이다. 병원에 가면 이런 저런 검사를 하는 이유는 바로 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다. 한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듣고, 맥진 복진 망진 등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실력 좋은 한의사를 만나면 대개 30분 이내에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진단을 하고 그 진단이 정확한지 확인까지 할 수 있다. 

60대 후반의 여자환자가 이명이 갑자기 생겼다고 내원했다. 3일 전부터 귀에서 ‘찌~~~’하는 수준의 이명이 아니라 머리 전체가 울리는 이명이 생겼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런 증상을 ‘뇌명’이라고 한다던데 맞느냐고 묻는다. 남들이 붙여준 병명은 절대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증상을 만든 병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다. 

맥을 보니 비장의 기운이 울체돼 몸에 습이 많은 상태이다. 습이 많아지면 신장도 힘들어지는데 신장맥이 아주 약하게 나온다. 간담부위에선 열이 뚜렷하게 보였다. 어떤 침치료를 할까 고민이 됐다. 먼저 이명은 신장의 문제로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비장과 신장을 편하게 만들어 주면, 이명이 치료될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침치료를 했다. 10분 뒤에 소리가 줄었느냐고 질문하니 “좀 줄은 듯하네요”라고 답한다. 만족할 정도가 아니다. 

그래서 담의 열을 빼는 침을 두 개 더 추가했다. 20분이 더 지나고 환자가 나가면서 원장실에 들렀다. “원장님 90%는 없어졌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맥진과 침치료를 하는 30분 사이에 환자의 이명에 대한 진단은 명확해졌다. 주원인이 담열이고, 부가적인 원인은 비장과 신장의 기능 약화라고 보면 된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셨나 봅니다”라고 질문을 하니 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보나마나 속이 상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화가 나면 증상이 더 심해질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이런 경험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있다. 복통이나 체증으로 오는 환자들의 맥을 보면 과식 때문인지, 신경성 소화불량인지, 비장의 기운이 떨어져서 나타난 증상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진단에 맞춰 침처방을 설계한 후 침을 놓고 결과를 보면 된다. 증상이 좋아지면 진단이 정확한 것이고, 증상이 별로 바뀌지 않으면 진단이 정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주 오래된 병의 경우엔 진단에 따른 침치료 한 번으로 병의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파킨슨병으로 진단 받은 60대 중반의 여자환자 분은 침치료를 3회 하고 나서 확진할 수 있었다. 맥진으론 너무 병의 원인이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치료 후에 본인이 느끼는 증상의 변화가 느렸기 때문이다. 이 환자의 주소증은 상열감과 사타구니 근처에서 나는 땀, 보행시에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괜찮지만 밤에 자다가 혼자 일어나지 못한다는 불편함도 호소했다. 파킨슨병의 무표정도 있었다.  

첫날 맥진에서 비장과 신장의 문제가 너무 뚜렷하게 보였고, 침치료 후엔 맥이 확실히 좋아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환자 본인이 느끼는 증상의 변화는 적었다. 명치 밑에 단단하게 뭉쳐 있는 게 좀 풀렸다고 했지만 보행 등 파킨슨병과 연관된 증상의 변화는 없었다. 다음 날 내원했을 때에는 사타구니 근처의 땀이 확연히 줄었고 상열감도 줄었다고 말했다. 침치료 후에는 맥이 더 좋아지고, 3일차엔 보행도 좋아졌다고 했다. 3회 치료를 하고서야 진단이 정확했다고 판단하고 약처방을 병행했다. 아주 멀리서 오시는 분이기에 주1회 침치료를 하고 있는데 표정도 밝아지고, 복부의 단단함은 거의 사라졌다. 보행도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 

세상사의 모든 문제도 원인을 알면 대처하기가 쉽다. 수학점수가 낮아 고민이 된다면 낮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수학공부 시간이 적었다면 당연히 공부시간을 늘려야 한다. 문제만 열심히 풀고,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개념을 숙지하면서 기출문제가 어떤 식으로 개념을 묻고 있는지를 깊게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좋은 선생님이 학생들의 문제점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듯이 한의사도 마찬가지이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병을 고친 것과 마찬가지다. 한의학엔 원인에 따른 약처방과 침처방이 수천년 동안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뜸 한의원 황치혁 원장 hwang@veritas-a.com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