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 클리닉]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만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생명의 불꽃이 다 꺼져가는 암환자...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 환자인데 본인이 처한 상황 때문에 되돌이킬 수 없게 악화시키는 간경화환자. 식도정맥류 파열을 10회 이상 겪었으면서도 스트레스와 피로에 시달리는 간경화환자에게 치료를 하려면 일을 그만하셔야 한다고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건강은 아주 나빠지기 전에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요즘에 오는 부종환자 때문에 가슴이 편치 않다. 써 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약은 쓸 수가 없다. 복수가 심한 환자인데도 이뇨제를 복용하지 못할 정도로 신장의 기능이 나쁘니 한약도 당연히 쓰기 어렵다. 70대 중반인 이 환자는 40여 년 전에 신우신염으로 신장을 하나 떼어낸 상황이니 신장이 좋아지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뜸도 마찬가지로 쓸 수가 없다. 배가 임신 막달보다 더 부를 정도로 복수가 차있으니 배는 물론이고 등에도 뜸을 뜰 수 없다.
침도 가장 중요한 혈자리를 활용할 수 없다. 복수가 아주 심해지면 혈액은 물론이고 임파액의 순환도 나빠져 다리가 붓게 되는데, 이 분은 무릎 이하가 너무 많이 부어 있다. 4리터의 복수를 빼고 나서도 다리의 붓기가 빠지지 않는다. 붓기가 심하면 침을 뺀 뒤에도 침구멍이 잘 닫히지 않아 체액이 계속 샐 수 있다. 단순히 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침자리가 자칫 세균에 오염되면 가뜩이나 면역력이 약한 분들은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에 신장의 원혈인 태계혈을 쓰지 못한다.

침 뜸 한약의 세 가지 무기 중에서 거의 2.5개는 사용할 수 없는 셈이다. 신장이 문제인 걸 알면서도 신장을 치료하지 못하는데도 한의원에 왔다 가면 컨디션이 좋아지신다며 멀리서 오시니 답답할 뿐이다.

70대 후반의 남자 환자분도 다리 부종이 심한데 치료의지가 부족한 경우다. 이 환자는 심장 혈관이 심하게 막혀 다리의 정맥을 심장에 이식했다. 심혈관의 문제가 있는 분들에겐 걷기 등의 유산소 운동이 좋지만 이분은 하루에 2천보도 걷지 않으셔서 오히려 건강이 회복되지 않고 점점 양쪽 다리가 붓고 있다. 심장의 혈류속도가 떨어져서 생기는 심장성 부종이 나타나고 있는 것.

오실 때마다 “걸으셔야 한다. 걸으시면 건강하게 몇 년 더 사실 수 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운동을 하지 않으신다. 운전기사에게도 “회장님 좀 걸으시라고 말씀하세요”라고 부탁해도 평생 기사가 있는 차를 타고 다니셔서 그런지 걷는 걸 너무 싫어하신단다.
심장이 약해서 하지가 부을 경우엔 걷기만으로도 부종이 많이 해소된다. 본인이 느낄 정도로 증상이 개선된다. 걸을 때에 종아리 근육이 발에 저류된 정맥혈을 짜서 심장으로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86세의 여자환자 분은 양쪽 무릎관절 수술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의 부종을 쉽게 고쳤다. 처음 내원했을 때엔 너무 부어서 본인의 신발 중에서 신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할 정도였다. 신장의 원혈인 태계혈을 쓸 수 없는 것은 위의 환자분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분은 치료의지가 확실했다. 물론 한약도 쓸 수 있었다. 신장과 방광의 기운을 잘 소통시키는 처방 15일분을 복용하면서 하루 40분 정도 걸으셨더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 번 더 약처방을 한 뒤엔 부종이 완전히 사라졌다. 승용차로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서 오시는 분이라서 그렇지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분이라면 한 번의 한약과 침치료로 충분했을 분이었다. 걷기로 본인의 병을 반쯤은 치료한 경우다.

걷기는 가장 좋은 운동이다. 돈도 들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다. 장비나 파트너가 필요하지도 않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며 아주 편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편하게 할 수 있다고 효과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효과가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기는 체력에 맞게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 종목들은 운동량을 조절하기 어렵다. 상대의 컨디션이나 기술이 좋으면 나의 운동강도가 높아진다. 등산도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의 보조에 맞추다 보면 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걷기는 자기의 체력과 그 날의 컨디션을 고려해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 파워워킹을 해야만 운동효과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논문들이 고강도의 운동과 저강도의 운동효과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결론 내고 있다. 터덜거리며 걷는 정도만 아니면 된다.

부상의 위험이 적다는 점도 또 다른 장점이다. 겨울 빙판길에서 넘어지거나, 자전거와 사고 나는 정도만 조심하면 별다른 부상위험이 없다. 운동을 하고 난 다음 날 무릎이나 발목의 관절이 아프다면 운동이 과했다고 보아야 한다. 통증이 있을 때는 걷기도 중단하는 것이 좋다.

걸으면 면역력도 좋아진다. 암환자들이 걷거나 등산을 하는 이유가 바로 면역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걸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체온이 올라가면 면역력 또한 증가한다.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무조건 오래 걷는 것은 삼가야 한다. 걷기는 주 3~4회 40분 이상이면 충분하다. 매일 2시간씩 걷는 것은 오히려 몸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

노년에 자기 스스로 움직이기 힘들어진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지거나, 바깥 출입을 못하고 창 밖만 바라보지 않으려면 다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 걸어서 심혈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으면 질병이 와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지금의 건강과 미래의 행복까지 지킬 수 있는 게 바로 걷기라는 이야기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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