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 ‘라오콘의 죽음’

한가운데에 노인이 벌렁 넘어져 있다. 뱀이 입을 벌리고 머리를 막 물려는 참이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뱀의 목을 잡고 머리는 뒤로 살짝 빼면서 조금이라도 죽음의 순간을 늦추려 한다. 왼다리는 힘들게 곧추세우고 발목과 발가락도 긴장한 듯 보인다. 오른쪽 다리는 허공에 떠있다. 살짝 벌어진 입, 위로 치켜뜬 눈에서 절망이나 두려움보다 간절한 바램 혹은 체념이 보인다. 노인의 머리맡에 누워 있는 젊은이는 이미 숨을 거둔 것 같다. 왼쪽의 청년은 양손으로 뱀을 붙잡은 채 버티고 있다. 죽음이 임박함을 알아서일까. 젊은이의 얼굴에서는 평화로움마저 느껴진다. 물리지 않으려고 활처럼 휘어진 몸, 과도하게 길게 늘어뜨려진 왼팔, 뱀이 그리는 반원(半圓), 이 모든 모양새가 기이하게 보인다. 오른쪽에 서서 무심한 듯 광경을 내려다보는 세 인물의 모습도 특이하다.

그림은 라오콘의 최후를 보여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10여년 가까운 전투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리스 장군 오디세우스가 꾀를 짜낸다. 패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퇴각시키면서 커다란 목마를 트로이에게 선물로 주는 척했다. 목마 안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다. 성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전멸시킨다는 전략이었다. 트로이인들이 의심없이 선물을 받으려 하자 신관(神官) 라오콘(Laocoön)이 나서서 반대한다. 선물이 아니라 속임수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이미 그리스인들의 감언이설과 선물에 마음이 흔들린 트로이인들은 그의 경고와 설득을 귀등으로 흘려버린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인 트로이인들은 경솔하게 승리에 취해 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스군을 지지하는 신들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고 했던 라오콘을 용서할 리가 없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거대한 바다뱀 두 마리가 라오콘과 두 아들을 칭칭 감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엘 그레코는 바다뱀이 무는 찰나를 택해 그렸다.

이 주제를 나타낸 대표적인 작품은 고대 그리스 조각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기원전 160-20, 바티칸 박물관)이다. 절망과 탄식의 마지막 숨을 몰아쉰 라오콘의 표정, 두려워하는 두 아들과 라오콘이 이루는 균형 잡힌 구성, 완벽한 근육 표현 등은 고대 그리스 최고의 조각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땅에 묻혀 있다가 1506년에 발굴되면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인 엘 그레코는 회화의 잇점을 살려 주제를 나타낸다. 우선 색깔이다. 비바람이 휘몰아칠 것 같은 하늘과 어두운 무채색으로 표현된 인물들 사이에 음산한 도시배경이 펼쳐져 있다. 라오콘의 충고를 무시한 댓가로 곧 사라질 트로이의 운명을 암시한다. 실제로는 트로이가 아니라 자신이 살던 스페인의 톨레도를 그렸다 한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작은 말은 목마를 나타낸다. 구성도 파격적이다. 배경을 압도하는 큰 크기의 인물들이 거대한 캔버스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자세는 불안정하고 몸짓은 과장되어 관람객은 인물 하나하나에 몰입하여 바라보게 된다. 오른쪽의 세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해 미술사가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하지만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였던 ‘파리스의 심판’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스군을 지지했던 헤라와 아테네는 라오콘의 최후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데 반해 트로이 편이었던 아프로디테는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게 아닐까.

화가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로 그리스의 크레타 섬 태생이다. 20대 후반인 1578년부터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머물며 당대 거장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베네치아에서는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로부터 탁월한 색채 감각과 드라마틱한 구성능력을 익혔고, 파르마에서는 파르미지아노와 코레조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577년 톨레도에 정착하여 교회화가로 활동하면서 이탈리아어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인 ‘엘 그레코’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는 후기 르네상스 양식, 즉 매너리즘 양식이 유행하던 시대다. 종교개혁과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르네상스기의 조화와 안정은 사라지고 위태로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인체는 길게 늘어뜨려지고 인물들간의 관계는 모호하며 그들 모두가 놓인 공간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마치 지각변동이 일어난 듯 뒤틀려 있다. 매너리즘 화가들 중에서도 엘 그레코는 화려한 색채, 독특한 명암법, 비율이 맞지 않는 인물 구성, 불안정한 구성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자랑한다.

작품은 미국의 기업가인 사무엘 헨리 크레스(Samuel Henry Kress, 1863-1955) 소장품이었다. 크레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비롯, 방대한 컬렉션을 이루었다. 인상주의와 20세기 초 아방 가르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이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했던 분야의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가 1939년 국가에 기증한 373점의 이탈리아 회화와 18점의 조각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1941년 개관할 때부터 주요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라오콘의 죽음’은 1946년 추가 기증되어 매년 수백만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라오콘의 죽음 The death of Laocoön’ (1610-1614, 캔버스에 유채, 137.5X172.5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선명한 화질의 그림으로 직접 가기: 엘 그레코 ‘라오콘의 죽음’

https://en.wikipedia.org/wiki/Laoco%C3%B6n_(El_Greco)#/media/File:El_Greco_(Domenikos_Theotokopoulos)_-_Laoco%C3%B6n_-_Google_Art_Project.jpg

고대 그리스 작품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https://en.wikipedia.org/wiki/Laoco%C3%B6n_and_His_Sons#/media/File:Laocoon_and_His_Son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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