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의 실존적 위협에 주목.. 미래세대와 함께 '더 나은 미래' 위한 논의

[베리타스알파=나동욱 기자] 경희대는 19일 서울캠퍼스 평화의 전당에서 제38회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하는 'Peace BAR Festival 2019'(이하 PBF 2019) 기념식과 원탁회의를 열었다고 20일 밝혔다.

'기후재앙과 진실의 정치-미래세대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PBF 2019에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 경희대 미원석좌교수 등의 세계적 지도자와 피터 와담스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이안 던롭 로마클럽 회원 등을 비롯해 150여 명의 중/고등학생, 대학생, 일반인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세계평화의 날 개관 영상' 상영과 이리나 보코바 미원석좌교수와 장피에르 라파랭 전 프랑스 총리의 축사, 미래세대의 전언 영상 '우리에게 2050년은 있는가?' 상영, 조인원 학교법인 경희학원 이사장의 기념사와 경희대 음악대학의 기념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이리나 보코바 미원석좌교수는 축사에서 "경희학원 설립자인 故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의 평화에 대한 의지가 세계평화의 날 제정에 큰 역할을 했고, 세계평화의 날과 해가 전 세계에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라며 "PBF 2019는 세계가 직면한 분쟁과 기후재앙, 무력분쟁 등과 평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분명한 현실이며, 미래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라며 기후재앙의 위급성을 강조했다.

개발과 성장주의를 넘어선 협력의 노력도 강조했다. 보코바 미원석좌교수는 "세계 정치계도 기후변화가 평화와 안보에 큰 위협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PBF 2019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와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피에르 라파랭 전 프랑스 총리는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다. 라파랭 전 총리는 "평화와 기후변화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교육의 성과로 미래세대가 환경과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시민사회 인식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기후변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은 곧 정치계의 인식을 바꿀 원동력"이라며 "PBF 2019와 같은 행사는 기후변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환경 의식을 넓히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인원 학교법인 경희학원 이사장은 '10년의 미래, 의식과 정치–기후변화의 새 국면'이라는 제목의 기념사에서 기후변화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조인원 이사장은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의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적색경보를 울립니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2020년까지 경로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간이 다 돼갑니다'라는 담화를 소개하며 "이런 메시지에는 '기후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시대의 긴박성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세상정치가 기후변화에 얽힌 서사와 행동을 이끌었다"라며 "지구적 기후재앙의 치명적 변수이자 상징인 그린란드 빙하가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녹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도 그린란드 구입에 대한 비즈니스 제안이 오고 가는 것이 세상정치의 진면목"이라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의식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앞으로 10년이 관건'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하며 "예견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지금 이곳의 삶과 정치에 담아내려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고착된 현실에 포획된 의식, 그안의 세계에서 권력을 도모하는 현실정치,  이를 넘어서려고 노력할 때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가 열릴 수 있다"라며 기념사를 마쳤다. 

세계평화의 날 기념 원탁회의에서는 올해 PBF의 주제인 '기후재앙과 진실의 정치-미래세대에 미래는 있는가'를 두고, 국내외 과학자, 정치학자, 실천가, 미래세대가 열린 대화를 나눴다. 원탁회의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피터 와담스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이안 던롭 로마클럽 회원의 기조발제 후, 발제자와 조인원 학교법인 경희학원 이사장이 함께 기후변화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좌장은 이리나 보코바 경희대 미원석좌교수가 맡았다. 

기조발제자들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청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이제 전례 없는 폭염, 태풍, 산불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뉴노멀(New Normal)이다. 기후변화의 실존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 행동의 목적은 기후변화 적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 전 사무총장은 UN 재임 시절 기후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문제해결에 나선 경험을 들려주며 "많은 협상과 노력 끝에 2015년 195개국 정상이 모여 '파리기후협약'을 체결했지만, 미국의 탈퇴 선언 등 유감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녹색기후기금' 역시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기후변화 문제 완화를 위한 정치적 노력 촉구와 함께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행동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의 정책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로 2050년에는 대부분의 인류 문명이 파멸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던 이안 던롭은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 가까워졌다.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 전에 지났다. 더는 시간이 없다. 탄소 배출을 빠르게 감소시켜 티핑포인트에 이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시 대응에 준하는 직접적이고 과감한 조치, 전례 없는 세계적인 집단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터 와담스 교수는 "빙하연구자들은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전 세계 해수면이 2100년에는 2m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세계 각국은 북극 개발 이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나서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원탁회의에서 패널들은 기후변화가 인류의 실존적 위협이라는 데 동의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눴다. 이안 던롭은 기후변화 문제를 안보위기로 규정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기후 시스템은 서로 연관돼 있어 하나가 촉발하면 연쇄적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구의 기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북극 빙하의 소멸,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해 탄소원으로 사용하는 현상 등은 티핑포인트에 이르는 시기를 더욱 앞당긴다고 우려한 뒤, 화석연료의 폐기와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요청했다.

조인원 이사장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의식의 부재를 언급하며 시민의식을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기후재앙을 경고하는 과학적 증거와 함께 한 달 남짓 이어진 북극의 화재, 중앙아프리카의 4000~5000회의 화재 등 경험적 증거가 충분하지만, 현실정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정치가 나서지 않는다면 시민이 나서야 한다. 시민 개개인이 기후재앙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안 던롭은 이에 공감하며 성장에만 주력하는 자본주의 프레임이 기후재앙을 초래했다고 진단한 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치를 새롭게 찾아 나설 것을 주문했다.

피터 와담스 교수는 정치인과 시민의 의지와 함께 과학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재앙은 어느 한 국가,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담스 교수는 온실가스 포집기술을 예로 들며 "모든 과학자가 모여 전문성을 살리면서 통합해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적/지구적 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해왔다. 이제 정치인들이 과학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지지해줘야 한다"며 정치인들의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패널들은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면서 교육과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와담스 교수는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학의 기초교육과정에서 기후변화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기후변화 교육의 확대를 요청했다.

이번 PBF 2019에서는 미래세대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중고등학생들은 경희대 재학생들과 PBF 학생기획단으로 활동하며 영상을 제작하고 행사에도 참여해 세계적 학자, 실천가들과 의견을 나눴다. 원탁회의 이후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미래세대는 "미래가 두렵다"고 토로하며 구체적인 해결 방법에 대한 질문과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교육을 요청했다. 이안 던롭은 "전 세계에서 기후대응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기성세대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라며 "한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건설적인 방법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안 던롭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육과 대학의 역할"이라고 피력했다.

조인원 이사장은 "대학이 책임의식을 갖고 깊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라며 "미래세대에게 온전한 미래를 물려주는 것이 인류의 책임이다. 교육기관은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그 역할 중 하나가 당면한 현실과 도래할 미래에 대한 연구결과를 사회에 알리고 교육으로 풀어내 시민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리나 보코바 교수는 "지속가능한 발전 없이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구적 문제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와 같은 의제가 수립됐다. 이 목표를 들여다보면 지속가능한 미래와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오전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논의를 주의 깊게 듣던 경규현(대구장신초) 학생은 "얼마전 학교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업을 들었는데, 30년 후에 우리 미래가 불투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그레타 툰베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분리수거를 직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 학생의 학부모는 "PBF 2019가 아이들의 미래를 즉각적으로 바꿀 순 없지만, 기성세대도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 주고 싶다"라며 "좀더 실천적인 방안이 나와 미래세대의 미래를 찾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평화의 날과 해는 1981년 경희대 설립자 미원 조영식 박사가 세계대학총장회(IAUP)와 코스타리카 정부를 통해 UN에 제안했으며, 그해 11월 제36차 UN 총회에서 157개 회원국 전원일치로 제정됐다. 당시 UN 총회 결의문(Resolution 36/37)은 '모든 국가와 시민이 평화의 이상(理想)을 기념하고 고양시키고자' 세계평화의 날을 제정했으며, '모든 UN 회원국, 산하기관과 기구, 지역기구, NGO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UN과의 협력하에 특히 교육적 수단을 통해 세계평화의 날의 의미를 되새길 것'을 권유한다고 선언했다. UN은 매년 9월 셋째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2011년부터 9월 21)'로, 1986년을 '세계평화의 해'로 제정했다.

경희대는 1982년부터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를 열어왔다. 이 국제학술회의가 2004년부터 PBF로 확대됐다. PBF는 미래문명의 길을 모색하는 지구촌 평화 축제다. PBF의 BAR은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지구공동사회를 함께 만들자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경희대 제공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