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지구

대럴 브리커, 존 이빗슨 /을유문화사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한국인이 늙어간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아이의 수, 즉 출생률이 0.98명에 불과하다. 둘이 결혼해서 하나도 채 안 낳는다. 이런 식이면 인구절벽은 자명하다. 일할 젊은이는 줄어들고 고령자가 늘어간다. 사회적 부담이 늘어가고 젊은이는 희망을 버린다. 희망을 잃은 채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저출산은 국가 발목을 잡는 ‘덫’으로 견고해진다. 저출산의 덫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세계적 초고령국가로 자리한 일본은 물론, 폭발하는 인구를 줄인다고 산아제한을 강제했던 중국도 위기에 봉착했다. 자녀를 많이 낳던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유럽도 미대륙도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인류가 늙어가는 건 전 세계적 트렌드로 이미 자리잡아 되돌리기 힘들 지경이다.

그래서 책 ‘텅 빈 지구’를 읽어야 한다. 일단 논술과 면접을 앞둔 수험생에 필독서로 제안한다. 출제자인 교수들의 고민 중 가장 현실적인 건 (전 인류의 문제도 문제이지만) 당장 대학가에 불어닥친 학령인구감소의 암울할 미래일 것이다. (망하는 대학이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도 읽자. 젠더갈등 취업 결혼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힌트가 될만하다. 중장년도 읽자. 초고령화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자. 저출산문제 당국자도 읽자. 되도않게 돈으로 막기보다 효율적인 대안이 있다. 일단 한국인이라면 읽자. 한국이 끝내 저출산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낙담에는 민족주의가 뿌리깊게 박혀있다. 이민선진국인 캐나다에서 나고자란 저자들이 제안하는 대안인 ‘이민’을 ‘한민족’인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인이 본 한국의 단면>
책은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인구감소’의 추세를 아우르기부터 시작한다. 인구감소가 유행처럼 번진 이유를 설명하는 데 초반 30%가량을 할애한다.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 것이다. 인간 스스로 인구를 더 줄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은 과거에 전혀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이다. … 우리종족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가 늙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시인이 어느 순간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 출생률이 감소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기억해 보라. 도시화. 그것은 건장한 청년이 농장에서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자식들을 경제적인 부채로 생각하게 만든다. 도시화는 여성들의 권한을 강화하여 한때 그들의 운신의 폭을 제한했던 자식들을 으레 덜 낳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두 가지 요소는 19세기와 20세기에 선진국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요소들의 영향력은 개발도상국들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 … 출산율은 한 세기 반 동안 계속해서 하락해 왔다. 도시화, 공중 보건의 향상, 물질적 풍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의 자율성(교육) 증가가 전 세대에 걸쳐 여성당 아이 출산율 하락을 초래했다. 피임약의 등장, 용이한 산아 제한, 적절한 성교육 같은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출산율하락에 기여했다. 베이비붐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현상이 사라지자, 낮은 출산율로의 추세 변화가 재개되었다. 이제 출산율이 인구대체율보다 낮은 추세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저자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주요 전문가 및 일반인들과 인터뷰한 기록과 인구학자들의 연구, 뉴스 등을 통해 점점 비어 가는 지구의 현실을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고령화사회의 가속화로 인한 의료비와 연금 수요 증가, 노동력 감소, 경기 침체 등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여기에 한국의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우리의 걱정을 캐나다인의 눈을 통해 건조하게 조우할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저자들의 시선은 한국의 경제발전기인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구폭탄이 두려웠던 한국의 군사정부는 출산율을 낮추는 국민운동을 공격적으로 전개하여 성공했다. 1980년대 한국의 출생률은 인구대체율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뒤 한국의 출생률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1.2(현재는 0.98)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까지 계속해서 하락했다. 그리고 생활수준의 향상은 기대수명을 세계최대 수준인 82세까지 끌어올렸다. 고령화 지수aging index는 15세미만 유소년 인구 1백명 대비 65세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은 고령화 지수가 89로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40년이면 289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청소년(14~17세) 1명당 노인 3명꼴인 셈이다. 한국은 경제기적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정책실패의 근거도 제시한다. “한국은 더 보수적인 정책을 쓴다. (바로 앞서 국경일 저녁을 ‘전 국민의 밤’으로 선언하고 그날 밤에 남녀가 아이를 만들 것을 장려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었다) 불임치료를 받는 부부에게 지급하는 정부보조금, 아빠들의 육아휴직, 아이가 셋 이상인 부모에 공공보육시설에 들어갈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 등이 있다. 2010년 한국정부는 노동자들이 일찍 집에 들어가서 ‘출산과 양육에 전념하도록 돕기’ 위해 매달 셋째 주 수요일 저녁7시30분-한국의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기준으로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는 시간-에 회사 건물의 전등을 끄게 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무 소용이 없다. 2015년 출산율은 전년보다 5퍼센트 더 떨어졌다. … 한국정부는 각종 육아장려금 같은 국가보조금을 통해 출산율하락을 막아 보려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하지만 세계 어느 정부도 여성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아이를 낳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을 인터뷰한 내용도 나온다. “그들은 맨 처음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했다. 이른바 ‘3포세대’다. ‘여성이 결혼하고 임신하게 되면, 대다수 고용주들은 그녀를 직장에서 내보내죠’라고 지혜는 말한다. …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고용주들이 장기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벌충하기 위해 새로 고용하는 청년들을 계약직에 한정해서 뽑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계약직 봉급으로 서울의 비싼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안정된 정규직 고용의 부족과 주택 마련의 어려움은 3포세대를 5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확실한 일자리, 내 집 마련-로 전환시켰다. … 오늘날 이런 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엄청나게 많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연령에 달하면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건강보험을 비롯한 의료비 지출과 밀레니얼 세대가 내야 할 세금 또한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기해야 할 변수가 끝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N포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는 앞으로 점점 더 곤경에 빠질 것이다.”

<대안은 ‘이민 수용’.. 한국은 가능할까>
대안으로 저자들은 ‘이민수용 정책’을 주장한다.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는 대체인력을 수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많은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인종 문제를 둘러싼 긴장 관계, 빈민가, 격렬한 논쟁도 거의 없이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인원수 기준으로 더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캐나다가 이민을 하나의 경제 정책-캐나다는 이민 가점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유입되는 이민자들이 캐나다 토박이들보다 평균적으로 교육수준이 더 높다-으로 바라보고 다문화주의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캐나다인들은 평화롭고 부유하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를 낳은 캐나다의 모자이크 문화 속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권리를 공유한다. … 이민은 인구 대체율을 밑도는 출산율로 고민하는 선진 사회들이 적정 인구 수준을 유지하거나 적어도 인구 감소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민은 저자들의 말처럼 “미래의 해법뿐 아니라 고립 거부 인종다툼 긴장고조 같은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모든 나라가 캐나다처럼 자기 나라에 들어오는 이민자 물결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많은 한국인 스웨덴인 칠레인은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이민 선진국인 캐나다 국적의 저자들이 보기에, 한국은 자긍심 깃든 강한 민족주의 탓에 현실적 대안인 이민정책이 자리잡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게다가 최근 동북아 긴장감이 고조되며 한국은 일본 중국에 배척성향이 고개를 바짝 든 상태다. 전망은 암울하기만 할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통해 고민해볼 여지가 아직 우리에겐 남아있다.

저자 대럴 브리커와 존 이빗슨은 이 분야 선수들이다. 대럴 브리커는 국제적인 여론조사기관의 최고경영자다. 존 이빗슨은 캐나다 유력 신문의 대표저술가다. ‘저자들의 노고를 아끼지 않은 사실 확인 작업과 설득력 있는 분석 덕분에, ‘텅 빈 지구’는 기존의 통념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충분하고 납득할만한 논거를 제공한다’는 북리스트의 서평이 제격이다. 책은 캐나다 전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들도 잘썼는데, 번역도 잘했다. 저자들은 사실을 꾸밈없이 건조하게 전달하면서 냉소적인 반어법도 썼는데, 번역도 그 표현을 제대로 살린 느낌이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가을장마로 책장이 들러붙을 각오는 하자. 손에 들고 수시로 읽고 다닐 가능성이 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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