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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여성, 책 그리고 초상화  

기사승인 2019.08.26  08: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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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여인’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에는 책을 가까이하는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미녀와 야수’에서의 ‘벨 Belle’이 좋은 예다. 그녀는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래의 아가씨들은 잘 생긴 청년 가스통의 관심을 끄는 일에만 몰두하지만 벨은 마을의 남자들이나,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모두가 다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책 속에 있다. 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던 벨은 모험과 위험을 불사하고 아버지를 구하러 떠났고 결국 야수(왕자)와의 사랑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다. 화가들 역시 ‘책 읽는 여인’을 많이 그렸다. ‘수태고지’에서의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르네상스기의 많은 귀부인들도 책을 들고 있다. 책을 통해 그림의 주인공들은 깊은 신앙심과 참회, 지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19세기 이래 코로,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은 반복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독하게 독서에 빠져 있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면모가 부각되어 갔다. 18세기 중반,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80-1867)가 ‘책 읽는 여인’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렸다.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젊은 여인이 책을 읽고 있다. 그림의 왼쪽, 그러니까 여인의 앞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환하게 빛나는 노란색 드레스가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목의 프릴 장식과 쿠션 양끝의 연회색으로 여인의 얼굴은 더욱 부각된다. 얼굴은 완벽한 측면이다. 쿠션을 등 뒤에 대고 편안하게 앉아 있다. 의자의 생김새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꽤 긴 팔걸이에 왼팔을 걸치고 오른손으로 책을 들고 있다. 통통하고 귀여운 목덜미와 책을 읽느라 내려 깐 속눈썹, 부드러운 콧날, 앙증맞은 입술, 홍조를 띤 볼이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긴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서 리본으로 묶었다. 보라색 리본은 의자 뒤의 쿠션과 드레스의 그늘진 부분, 가슴장식과 동일한 색조를 띠면서 그림 전체에 통일감을 준다. 옷 주름과 가슴장식, 쿠션의 푹신함이 몇 번의 붓질만으로 쓱쓱 그려진 것 같다. 얼굴과 목, 머리카락에도 마른 물감 위에 전체적으로 연회색이 얇게 덧발라져서 그늘진 느낌이 자연스럽다. 2015년의 정밀 분석에 따르면 밑그림에서는 여인이 깃털장식의 모자를 쓴 채 4분의 3 각도로 얼굴을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다.

프라고나르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로, 1765년에 ‘회화조각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입단초기에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화풍으로 작업하여, 1769년경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몇시간 만에 완성한 듯한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이 초상화들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제 인물을 그린 건지, 상상의 인물을 그린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를 ‘환상 초상화 portrait de fantaisie’라고 부른다. 가공의 인물을 그렸다는 의미다. 주문 제작되는 초상화가 대체로 딱딱하고 공식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프라고나르는 인물의 움직임과 개성, 내면의 열정을 빠르고 대담한 붓질로 그렸다. 루브르에 소장된 ‘남자의 초상’(예전에는 ‘디드로의 초상’으로 알려짐)이나 ‘사제의 초상’이 좋은 예다. ‘사제의 초상’에만 유일하게 제작연도를 밝혀 두었는데, 1시간 만에 그렸다는 말도 함께 적혀 있다. ‘책 읽는 여인’ 역시 이 당시에 그려진 작품이다. 가로 65cm, 세로 81cm로 다른 초상화들과 같은 크기다. 터치가 거친 듯하면서도 정교하고, 순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정적인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 좀 다르다. 프라고나르보다 먼저 이렇게 즉흥적인 방식으로 작업한 화가로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프란츠 할스(Frans Halls)가 있다.

이후 화가는 1771년에서 1772년 사이, 루이 15세의 애인 마담 뒤 바리(Madame du Barry)의 주문에 의해 상당히 큰 규모의 ‘사랑의 단계’ 시리즈를 야심차게 그리지만 단번에 거절당한다. 이미 고전적 단순함과 절도가 지배적인 미학이 된 시기에 낡은 로코코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프라고나르와 함께 사라질 자유로운 화풍은 50여년 뒤 들라크루아가 다시 부활시킬 것이다.

그림이 소장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는 앤드류 W. 멜론(Andrew W. Mellon, 1855-1937)의 컬렉션을 토대로 출발했다. 기업가이자 정치가였던 멜론은 두치오, 얀 반 에이크, 라파엘로, 티치아노,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 많은 작품을 수집한 컬렉셔너이기도 했다. 1937년, 소장품을 천만불과 함께 국가에 기증하여 1941년, 미술관이 문을 열게 된다. 멜론은 미술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에서 미술관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희망대로 개관전부터 기증이 이어져 엘 그레코, 렘브란트, 도미에, 뭉크, 피카소 등 소장 작품의 목록이 급속히 늘어나 국제적인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현재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는 개관 때 지은 서관, 20세기 이후 현대 미술은 1978년 밍 페이(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80년대에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에 참여, 유리 피라미드를 건설)의 설계로 새로 지은 동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멜론의 자녀들 역시 컬렉션을 풍성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딸인 엘사 멜론 브뤼스(Ailsa Mellon Bruce, 1901-1969)는 1961년, 개인 소장이었던 프랑스 회화 컬렉션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책 읽는 여인’은 이때부터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80-1867), ‘책 읽는 여인 La liseuse’(1769년경, 캔버스에 유채, 65X81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선명한 화질의 그림으로 직접 가기: ‘책 읽는 여인’

https://fr.wikipedia.org/wiki/La_Liseuse#/media/Fichier:Fragonard,_The_Reader.jpg

‘사제의 초상’

https://www.akg-images.co.uk/archive/Figure-de-fantaisie.-Portrait-de-l%E2%80%99abbe-de-Saint-Non-2UMDHUKCTWQZ.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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