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밀어붙인 당국 자초'.. '수요자 피해 키운 정부개입'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청문을 마친 자사고 관계자들이 법적대응을 예고하면서 현장에서 우려해왔던 2020고입 파행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24일을 끝으로 재지정평가를 탈락한 서울 자사고 8곳의 청문이 모두 종료되지만 대부분의 자사고들이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날 청문대상이었던 학교 관계자들은 적극 소명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후 자사고들은 청문을 '요식행위'로 판단, 형식적으로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지정평가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기류의 변화가 있었다고 분석된다. 다만 자사고 관계자들은 향후 있을 소송에 대비해 행정절차를 모두 이행해두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청문을 거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게 되면 청문을 거친 자사고들의 일반고 전환이 확정된다. 서울교육청은 26일 교육부에 청문대상 자사고들의 지정취소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다. 교육부도 8월초까진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교육부가 동의할 경우 이들 자사고는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그렇지만 법적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입시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교육당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애당초 법적소송이 예견됐음에도 자사고 폐지를 강행하면서 수요자 피해를 방관한 것이나 다름없다. 고입파행으로 인한 입시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겠단 의지조차 없었던 셈”이라며 “실제 서울의 경우 미달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수요자들이 자사고의 옥석가리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무리한 정부개입이 현장반발과 혼란을 부추기고 결국 입시까지 파행으로 이끌었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교육청과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방식의 자사고폐지는 무리수를 거듭하면서 결국 입시준비생들을 포함한 모두를 피해자로 몰았다”고 말했다.

청문을 마친 자사고 관계자들이 법적대응을 예고하면서 향후 고입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교육청은 26일 교육부에 청문대상 자사고들의 지정취소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다. 교육부도 8월초까진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법적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입시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자사고 “법적공방 준비”..  '당국이 유발한 고입파행'>
자사고 지정이 취소될 경우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 등 8개교는 사실상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수의 자사고 관계자들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한 상황이다. 청문에 참여한 자사고들의 태도변화도 주목된다. 첫 날이었던 22일 청문을 진행했던 고교들은 적극적으로 소명한 편이었지만, 이후 자사고들은 빠르게 절차를 마쳤다. 대부분의 자사고들이 형식적으로만 청문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에선 자사고들이 법정공방을 염두에 두고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시 필수 절차인 청문이 파행될 경우 향후 행정소송에서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의 청문이 진행된 지 이틀째였던 지난 23일부터 자사고들의 기류가 달라졌다. 22일 청문을 실시했던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등은 평가의 부당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3일 첫 번째로 청문을 했던 숭문고 역시 불합리한 평가기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평가결과에 대한 서울교육청의 뚜렷한 설명이 없었던 청문절차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숭문고 전흥배 교장은 “우리의 의견에 대해 교육청은 전혀 답변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소명하기만 했다. 너무 요식행위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이후 신일고와 이대부고는 2시간으로 예정된 청문시간을 채우지도 않았다. 기존의 자사고들과 마찬가지로 재량지표의 부당성만 지적하고 청문을 빠르게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대부고 관계자는 “청문이 형식적 절차라는 걸 알고 있다. 청문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어서 일부러 학부모들도 오지 않게 했다”며 “이미 학교들이 소송 절차를 준비 중이고 법적 대응 쪽으로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세 번째 날인 24일 청문을 진행한 중앙고의 김종필 교장도 “청문은 요식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사고 지정이 취소 되면 법적 절차 밟을거다”고 같은 입장을 드러냈다. 자사고들이 수차례 예고했던 법적대응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지정취소된 자사고들의 행정소송이 이어질 경우 입시를 준비해왔던 수요자들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입학전형을 법정공방이 마무리된 이후에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는 물론 내년 입시를 준비하는 수요자들이 직접적인 피해자라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고입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수요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다. 특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피해가 가장 우려된다. 법정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자사고 지원여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애초에 정부가 입시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마음대로 정책을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자체부터 상식에 어긋난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폐지를 밀어붙일 경우 반발할 수밖에 없는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에 나서면서 고입혼란도 장기화될 것으로 충분히 예측된 상황이었다. 교육당국이 알면서도 수요자들의 피해를 키운 셈”이라고 말했다.

<수요자 없는 정책.. ‘무분별한 정부개입 전형’>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접근방식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이미 시장논리에 따라 학교경쟁력을 중심으로 특목고와 자사고 사이에서 ‘옥석가리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원서접수에서 미달이 누적되면서 자진해서 일반고 전환하는 고교들도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우수한 고교들만 남게 되는 구조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일방적으로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면서 수요자의 선택과 다르게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입시혼란에 대한 우려도 높다.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이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이덕난 조사관과 유지연 조사관은 지난달 27일 ‘자사고 정책의 쟁점 및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고교평준화제도 하에서 모든 자사고가 폐지된다면 ‘강남8학군’ 등 교육특구나 지역의 ‘명문고’들로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이유인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와 역행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역시 ‘외고 국제고 국제중 운영평가지표 개발 연구(2014)’에서 “학교 선택제는 가장 적합한 학습환경을 선택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 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 다양화로 연결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선택받지 못한 학교는 자연스럽게 폐쇄되도록 하는 시장적 접근방법이 바람직하다고도 덧붙였다. 

고교체제의 개편은 수요자 선택에 맡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고교체제를 개편할 수 있는 방법은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사고 입시를 준비해온 수요자들은 이미 경쟁력을 토대로 학교를 선택해왔다. 일부 학교엔 지원자가 몰리지만, 다른 자사고들은 정원을 채우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무분별하게 광역자사고가 늘어났다는 평가가 있음에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만큼 최적의 교육과정을 가진 학교들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정부가 크게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본다. 이미 상당수 일부 자사고들이 자진해서 일반고로 전환되고 있던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강행하면서 오히려 고입혼란만 초래됐다. 일방적인 정책으로 정치적 갈등까지 키우면서 사회적 비용까지 커지고 있다. 전형적인 정부실패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대안 없는’ 자사고 폐지.. ‘공교육 약화로 이어져’>
자사고 폐지 이후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없다는 점도 현장의 우려가 높은 부분이다. 수월성교육을 담당해왔던 특목고와 자사고를 무턱대고 일반고로 전환시킨다면 공교육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고의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고교의 ‘하향평준화’는 물론 사교육과 해외유학으로의 ‘풍선효과’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향후 고교체제의 개편에 대해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국가교육회의의 논의를 진행해 결정한다는 방침만 정했다. 결국 별다른 대안 없이 특목자사고의 폐지부터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단계적 고교체제 개편을 발표한 이후 교육부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1단계는 ‘고입 동시실시’와 ‘일반고 중복지원 금지’였다. 자사고가 우수학생을 선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렇지만 자사고 관계자들이 헌법소원까지 재기하면서 일반고 중복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결정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첫 순서인 입시제도 개선부터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후 2단계로 재지정평가를 통한 일반고 전환이 현재 진행중이다. 일반고로 전환된 학교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제공한다. 교육부는 2020년 하반기부터 3단계에 돌입한다. 대국민 의견을 수렴해 본격적인 교육체제 개편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교육부는 구체적으로 고교체제를 어떻게 개편할지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가 편향적 인식으로 대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자사고 폐지부터 추진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 폐지가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수학생들을 ‘싹쓸이’하기 때문에 일반고 학생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학업성취도 역시 떨어진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전체 고교의 0.01%에 불과한 자사고 학생들을 일반고로 돌려보낸다고 고교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학생의 탓을 하기 보다는 일반고 자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공교육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고 판단하면 수요자들은 사교육과 같은 대안을 택할 것이다.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강한 교육특구 쏠림도 우려된다. 국내 교육여건에 대한 불신으로 이른 시기부터 해외유학을 선택하는 우수학생들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실효성 의문' 서울 일반고 지원방안.. ‘현장 갈등만 증폭’>
최근 서울교육청이 발표한 일반고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 역시 공교육 약화에 대한 현장의 우려를 덜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미 시행했던 정책을 다시 발표한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기존 정책에 추가예산을 배정한 경우도 있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담화문을 통해 오히려 자사고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자사고 외고의 폐지를 위한 국민적 공론화를 국가교육회의에서 진행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교육감이 나서 현장의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조 교육감은 지난 17일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의 지원방안을 포함한 일반고 종합지원계획인 ‘일반고 전성시대 2.0’을 발표했다.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지난 ‘일반고 전성시대’ 계획의 연장선이다. 서울교육청은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교육부와 함께 5년간 총 2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일반고와 마찬가지로 학교당 최대 2000만원까지 강사비를 제공해 학생 수요가 적은 과목도 개설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과목을 설계할 수 있도록 일반고 교사를 교육과정/진로/진학전문가로 양성한다는 방안도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교육청의 이번 대책으로는 일방적인 자사고 폐지에 대한 수요자들의 불안감을 낮추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조 교육감이 현장의 갈등을 부추겼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조 교육감은 여러 언론인터뷰에서 ‘일반고 전성시대’를 가장 성공한 정책으로 꼽았다. 열패감에 젖어있던 일반고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는 게 이유”라며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조 교육감 말대로 실제로 일반고가 개선됐다면, 상대적으로 학비가 비싼 자사고를 굳이 찾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온다. 조 교육감은 일반고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도 자사고를 ‘부자학교’ ‘특권학교’라고 몰아붙였다. 우세한 여론을 동원해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 손쉽게 자사고 폐지를 이뤄낼 수 있는 공론화까지 제안했다. 일반고 지원방안만으로도 충분히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 교육감은 직접 일반고와 특목자사고를 대립시키면서 현장갈등까지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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