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의 미술관노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한강보다 훨씬 좁은 센강(La Seine)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파리 시내 중심에 있는 시테 섬(L’île de la Cité)은 고대의 갈리아인(Gauls)이 거점으로 삼은 이래 프랑스 역사의 중심지로, 얼마 전 화재가 났던 노틀담 성당과 파리 경시청, 생트 샤펠 등이 일년 내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시테 섬 옆에 있는 생 루이 섬(L’île Saint-Louis)은 루브르에서 가까운 지리적 여건상 17세기부터 대 저택이 많은 고급 주택가였다. 생 루이 섬에서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맛보면서 바라보는 노을지는 센강과 노틀담 성당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르노 자동차 공장이 있었던 스갱 섬 (L'île Seguin)이 있고, 파리 북서쪽 경계에서 2킬로 정도 위치에 자트 섬(L’île de la Jatte)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랑드자트 섬 (L'île de la Grande Jatte)으로 불리었다. 한 때 자동차와 항공관련 업체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초록의 자연과 강의 풍광을 누릴 수 있는 조용한 주택가이다. 19세기 인상주의 시대에, 모네, 고흐, 시슬레 등이 자트 섬을 소재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특히 이 섬을 유명하게 한 화가는 조르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이다.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바로 그 작품이다. 

강변에 근사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여인들은 대부분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쓰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강 쪽을 바라보고 있는 옆모습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부동의 자세다. 앞쪽으로 걸어오는 엄마와 아이, 뛰어노는 소녀, 장난치는 개들과 원숭이도 있지만, 그들 역시 경직되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낚시하는 여인, 트럼펫을 불거나 담배를 피는 남자, 강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서도 자연스러운 활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든 모두가 마치 비누방울 속에 갇혀 있는 듯이 고립되어 보인다. 생기가 없고 굳은 듯한 이런 외형은 19세기 말 부르주아들의 허영과 허세에 대한 풍자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 쇠라의 관심은 그림의 내용보다 형식에 있었다. 

쇠라는 이 작품을 여덟번째이자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1886)에 출품한다. 피사로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이에 반발한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는 전시회 불참을 선언한다. 인상주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신호다. 1870년대 초 인상주의자들은 순간순간 변하는 빛의 효과를 화폭에 담고자 하여, 물감을 미리 섞어 색을 만드는 방식에서 탈피, 원색을 캔버스에 바로 칠했다. 색은 섞을수록 어두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을 했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초록의 풀을 노랑, 빨강, 보라, 연두, 주황 등의 다양한 색깔들로 표현하여 햇볕의 찬란한 반짝임을 보여주었다. 거칠고 불규칙한 붓질, 제멋대로 뒤섞이는 색상이 캔버스를 채웠다. 그런데 쇠라는 인상주의자들의 방식이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주관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원색을 색깔별로 분리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병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84년 앵데팡당 전(展)(Salon des Indépendants)부터 폴 시냑, 피사로 등 일단의 화가들이 뜻을 같이 한 이러한 기법은 ‘분할주의’ 혹은 ‘점묘법’이라고 불리었다. 대부분의 인상주의자들과 비평가들은 이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했지만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은 ‘신인상주의 Néo-impressionnisme)라고 명명하며 이들의 혁신적인 미학을 높이 샀다. 그의 평가대로 신인상주의는 반 고흐, 야수파, 미래파, 추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쇠라가 이 전시회에 전시한 작품이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Une baignade à Asnières’(내셔널 갤러리, 런던)다. 붓터치는 여전히 인상주의적이었지만, 바랜 듯한 색깔,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인물들이 낳는 기이한 느낌을 주는 화법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2년 뒤 발표한 ‘그랑드자트 섬’은 이 작품과 쌍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크기도 거의 동일하다. 아니에르 강변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바로 그랑드자트 섬인데,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다른 점은 기법이다. 쇠라는 ‘그랑드자트 섬’을 인상주의풍으로 그리다가 2년여에 걸친 습작 과정에서 보다 엄격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화학자 슈브뢸(Michel Eugène Chevreul)과 비평가 샤를 블랑(Charles Blanc)의 색깔이론과 광학이론을 철저히 연구하면서 원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찍어서 작업했다. 도판으로 보면 그림 전체가 똑 같은 크기의 점으로 뒤덮인 것 같고, 생기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그림을 미술관에서 직접 대하면 캔버스 안쪽에서 빛이 나와 전시실을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보인다. 규칙적으로 찍은 듯이 보이는 점들도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태에 따라 곡선, 가로, 세로, 대각선 등으로 그려진 점 혹은 작은 선들 덕분에 무한히 퍼져가는 빛의 흐름과 더운 공기의 움직임이 전시실을 가득 메우는 기분이 든다. 

쇠라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882년부터 1891년까지 단 여섯 점의 대작만을 남기고 31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들을 그리기 위한 수많은 습작과 데생들을 눈여겨 보면 자신의 이론을 화폭에 구현하려 얼마나 깊이 탐구하고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다.  « 쇠라는 너무 일찍 갔으나 그 짧은 동안 그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라는 말로 폴 시냑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생전의 쇠라는 말한다. «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시(詩)를 느낀다고 한다. 난 내 방법론을 실행했을 뿐이다. » 그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의 작품에서 관람자는 시를 읽는다. 인물들은 예외없이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며 모두가 고독하고 공허해 보인다. 환하다 못해 창백한 빛 무리 속에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처럼 그들의 존재는 가볍고 현실감이 없다. 전통사회의 와해에서 비롯된 외로운 섬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이것이 쇠라가 여전히 강한 매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아닐까.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조르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 (1886, 캔버스에 유채, 207X30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선명한 화질의 그림으로 직접 가기: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d/Georges_Seurat_-_Un_dimanche_apr%C3%A8s-midi_%C3%A0_l%27%C3%8Ele_de_la_Grande_Jatte.jpg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b/Baigneurs_a_Asniere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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