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뺀' 교육부..'전적으로 교육감 책임'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올해 고입을 둘러싼 불투명성은 여전하다. 헌재는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선 합헌이지만 ‘이중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결론을 냈다. 다수의 재판관들이 위헌의견을 내면서 고입 동시실시의 합헌결정 이면엔 교육당국이 지금보다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는 취지를 전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교육부도 곧바로 중복지원을 금지하도록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올해 중3 학생들의 고입은 지난해와 큰 차이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일반고와 함께 후기모집을 실시한다. 이중지원도 허용되는 만큼 자사고나 외고 지원자도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극단으로 갈린 예측들이 쏟아지면서 수요자들의 혼란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자사고 폐지정책의 향배에 따른 진단부터 주요 매체는 물론 당사자들의 시각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올해 고입에서 특목자사고 지원의 유불리에 대한 확실치 않은 상태. 진학실적이 뒷받침되고 입시노하우도 믿을만한 만큼 적극적인 지원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정부의 정책기조가 변함없어 일반고의 전환 위험이 있어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고입혼란의 피로감을 쌓아온 수요자들을 중심으로 고입혼란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헌재 결정에도 고입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재지정평가의 평가체계를 바꿔 자사고폐지를 몰아붙여온 진보교육감들에게 책임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헌재판결에도 불구하고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폐지를 강행하고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을 낼 경우 올해 고입혼란의 극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까지 이어지는 재지정평가논란은 내년 고입까지도 불투명하게 한다. 교육부가 유은혜장관이후 논란이 큰 고입 대입에서 발을 뺀 국면이고 보면 고입혼란의 책임은 불확실성을 만들고 키운 진보교육감에게 온전히 돌아가게 된다. 피로감이 커진 수요자들 입장에선 입시혼란의 주범으로 교육감들을 지목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교육당국의 정책에 따른 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한 헌재의 결정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행정으로 밀어붙인다면 정치적 부담은 물론 도덕적 부담까지 져야할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올해 고입의 방향은 가닥이 잡혔다.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선 합헌이지만 ‘이중지원 금지’는 위헌으로 결론이 낫다. 다만 다수의 재판관들이 위헌의견을 내면서 고입 동시실시의 합헌결정 이면엔 교육당국이 지금보다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는 취지를 전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실제 헌재 판결의 취지는..고입 동시실시까지 위헌의견 다수>
헌재는 지난 11일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선 합헌, 이중지원 금지조항은 위헌이라고 각각 판단했다. 표면적으로는 헌재가 ‘고입 동시실시’에 있어선 교육부의 손을 들어준 모습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5명이 위헌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위헌결정을 위해서는 최소 6명이 필요한 만큼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이 더 많았음에도 정족수가 부족해 합헌 결정이 났다. 이중지원 금지조항의 경우 9명 전원이 위헌으로 결정한 것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현장의 혼란을 자초하며 수요자의 피해를 키웠던 교육당국에게 자제할 필요성을 전한 의도로 해석된다.

헌재의 서기석 재판관을 비롯한 5명은 교육부가 고교서열화를 완화를 위한 방법으로 ‘고입 동시실시’를 정당화한 것을 비판했다. 재판관들은 결정 요지에서 “우수학생 선점과 고교서열화 완화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이 손쉬운 자사고에 대한 규제를 택하면서 전체 고등학교를 하향평준화 시킬 우려가 있다”며 “자사고 입학전형에서 교과지식 질문이 금지되는 등 특별히 고교입시를 과열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고입 동시실시와 이중지원 금지에 의해 자사고 불합격자는 평준화지역 후기학교 배정이 보장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자사고의 존폐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의 조치가 자사고들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전국단위모집 자사고들은 기숙사 등 일반고에 필요하지 않은 시설 등을 설치한다. 물적 인적 투자 규모가 커 단순히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불이익이 예상된다. 정부가 자사고의 입학전형 시기를 변경하면서도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쳤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시행령을 전격 개정하면서 아무런 경과조치도 없이 2019학년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따라서 동시선발 조항은 자사고들의 사학운영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의견의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헌재가 교육당국의 지나친 개입이 수요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자사고 정책은 수월성교육으로 고교 평준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2002년 도입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헌재의 재판관들 역시 그 사실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며 “헌재가 지적한대로 고교서열화 문제는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교육계에서도 이미 자사고들이 대입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유가 입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과 학교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시체제를 기준으로 수요자들의 ‘옥석가리기’도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학교마다 경쟁률 격차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선택받지 못한 학교는 자연스럽게 폐쇄되도록 하는 시장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발빼는 교육부.. 부상하는 ‘교육감 책임론’>
헌재의 결정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청의 반응이 다소 차이가 있다. 큰 틀에서는 반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조속히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교육부와 달리 서울교육청은 이중지원 금지에 대한 위헌결정이 일반고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부가 손을 놓는 가운데 교육청 주도로 재지정평가를 통해 자사고 폐지를 추진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자사고들 역시 평가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 행정소송을 예고한 만큼 교육감들이 일방적으로 일반고 전환에 나선다면 고입혼란이 가중되면서 수요자들의 피해도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계에선 교육부가 내심 안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헌재의 최종결정을 존중한다며 위헌으로 결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5항에 대한 개정도 신속하게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즉시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사고 폐지를 주도해온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년3개월 만에 물러난 이후 교육부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국정과제였던 만큼 ‘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내부적으로는 고입혼란으로 악화된 여론에 대한 부담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의 일부 위헌결정을 빠르게 수용한 배경 역시 그 부담을 덜기 위한 판단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는다.

반면 교육청들은 자사고나 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일부지역에서 상향된 평가기준과 변경된 지표들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자사고들이 반발했지만 교육청들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올해 자사고들의 재지정평가 일정도 예년보다 앞당기면서 6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8월 중 ‘고입 전형계획’이 발표되기 이전까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서울교육청은 관계자는 헌재의 이중지원 금지 위헌결정에 대해서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원 학생이 이들 학교에서 떨어져도 일반고를 중복지원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둔 부분은 일반고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며 비판적 입장도 밝혔다.

재지정평가 결과에 따라 자사고들은 행정소송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법정공방이 이어진다면 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부는 헌재의 결정을 수용한 모습인 반면 서울교육청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낸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자사고들의 재지정평가를 시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육청들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부와 달리 진보교육감이 주축인 교육청들은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자사고나 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교육청이 재지정평가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사고 폐지를 시도할 경우 고입 자체가 파행으로 흐를 수 있다. 서울교육청은 6월 말까지 재지정평가를 완료해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의도를 내비쳤지만 일반고로 전환된 자사고들이 평가결과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건다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수요자들이 지원하려는 고교들의 모집요강도 제 때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셈이다.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예측됐음에도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모든 책임은 교육감에게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재지정평가 일정.. 올해 24개교, 내년 52개교 예정>
현 정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폐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들 학교에 대한 재지정평가 일정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올해와 내년에 각각 24곳, 52곳의 재지정평가가 실시된다. 평가기준 강화로 ‘무더기 지정취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올해 평가대상인 학교들은 기존 평가에 비추어 지난 5년간의 학교운영 평가를 준비해왔을 것이다”며 “갑작스런 평가 변경과 기준 강화로 자사고를 무더기 지정취소 한다면 갈등과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는 전국의 42개자사고 가운데 24곳의 재지정평가가 진행된다. 광양제철고 김천고 민사고 북일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하나고 현대청운고 등 전국단위 자사고 8개교와 경희고 계성고 동성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안산동산고 이대부고 이화여고 인천포스코고 중동고 중앙고 한가람고 한대부고 해운대고 등 광역단위 자사고 16곳이다. 재지정평가 기준이 갑작스럽게 상향되면서 자사고들 사이에서 지정취소의 불안감이 고조된 상태다. 가장 많은 학교들이 평가대상인 서울에선 자사고들이 재지정평가의 첫 단계인 운영성과평가보고서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서울교육청이 한 차례 제출기한을 연장하면서 지난 5일 모든 자사고들이 보고서를 냈지만 평가결과에 따라 행정소송을 예고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전국의 30개외고의 재지정평가가 예정된 점도 고입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대목이다. 학교별 선호도 격차가 뚜렷한 만큼 상대적으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고교들을 중심으로 지정취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대부고와 인천하늘고 등 전국자사고 2곳과 경문고 경일여고 군산중앙고 남성고 대건고 대광고 대성고(대전) 보인고 선덕고 세화여고 양정고 장훈고 현대고 휘문고 등 광역자사고 14곳의 평가도 시행된다. 전국의 7개국제고 가운데 세종국제고를 제외한 고양국제고 동탄국제고 부산국제고 서울국제고 인천국제고 청심국제고 등 6개교의 재지정여부도 결정된다.

2022년엔 대전대신고의 재지정평가가 실시된다. 대전대신고는 2012년 광역단위 자사고로 전환되면서 2017년에 재지정평가를 받았던 유일한 학교였다. 세종국제고와 충남삼성고는 2023년 재지정평가를 받는다. 두 학교 모두 2013년 개교하면서 첫 재지정평가를 2018년에 통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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