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정시 선호 뚜렷..'사교육 효과 명확하기 때문'

[베리타스알파=유수지 기자] 지난해 고소득층의 수능 선호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학종이 일명 '금수저 전형'으로 오해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실제 '금수저'들은 오히려 정시 선호가 뚜렷하다는 조사결과이기 때문에 눈길을 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정시의 경우 쏟아 붓는 사교육의 효과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전형이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 수록 선호도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학종에 대한 오해가 정시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을 이끌어낸 현 상황에서, 실제 고소득층에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정시전형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조사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고소득층의 수능 선호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학종이 일명 '금수저 전형'으로 오해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실제 '금수저'들은 오히려 정시 선호가 뚜렷하다는 조사결과이기 때문에 눈길을 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소득수준 높을수록 수능 선호 높아>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2018교육여론조사' 내 ‘대입에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항목’ 조사에서 고소득층의 경우 ‘수능성적’을 선택하는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입전형 반영요소 조사는 △수능성적 △특기적성 △인성봉사 △내신성적 등의 항목으로 진행됐으며 결과는 상위 3개 항목의 비율만 공개됐다.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의 응답자는 △수능성적 38.2% △특기적성 21.0% △인성봉사 20.5% 순의 선택비율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능성적 선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모습이다. 전년 수치와 비교해도 상승세가 뚜렷하다. 2017조사결과에서는 △수능성적 29.7% △특기적성 22.9% △인성봉사 22.4%의 선택비율을 보였다. 2018년 수치와 비교하면 수능성적 선택비중은 8.5%가 증가했으며 특기적성/인성봉사 항목 비중은 각 1.9% 감소했다. 한 단계 아래 소득군인 ‘월 소득 400~600만원 미만’의 응답자와의 비교에서도 수능성적 선택 비율은 8.5%가량 높은 수준이다. 월 소득 400~600만원 미만 그룹은 29.7%의 비중으로 수능성적 항목을 선택했다. 이어 △특기적성 26.5% △인성봉사 20.6%의 순이다. 월소득 400만원 이상의 두 그룹군은 수능성적 선택 비중이 가장 큰 특징이다.

400만원 미만 그룹군의 경우엔 특기적성 선택 비중이 더 높았다. 월 소득 200~400만원 미만은 △특기적성 30.4% △인성봉사 23.9% △수능성적 23.6%,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은 △특기적성 28.6% △수능성적 24.9% △인성봉사 23.0% 순의 선택 비율을 보였다.

교육전문가들은 학종이 고소득층의 대입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현재의 '오해'를 증명하는 조사결과라고 분석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능 위주 입시가 사교육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고소득군 수험생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조사결과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학종이 학부모 경제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오해로 인해 정시 확대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학종은 학생부/자소서/면접을 통해 꿈과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한 학생을 선별하는 전형이기 때문에, 사교육을 통해 준비한 학생들의 획일화된 유형을 구별해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기적성에 무게를 둔, 소득군이 낮은 그룹의 학생과 지방 수험생들이 학종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실 금수저에게는 모든 전형이 유리하다. 마치 학종만 금수저전형이라는 비난은 교육특구와 사교육측이 수능 확대를 위해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하다. 교육특구나 사교육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수능의 선호도가 높을수 밖에 없다. 실제 학종중심의 수시체제 입장에서 보면 대입을 왜곡시키는 의대실적이나 정시실적은 대부분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특구 중심인 점을 봐도 알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는 매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교육정책에 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다. 지난해 발표된 13차 설문조사는 2018년 8월6일부터 9월3일까지 약 4주간 만19세 이상 75세 이하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교육정책/학교교육 평가 ▲교사 ▲학생 ▲교육과정/교육내용 ▲고교 정책/대입 ▲교육복지/교육재정 ▲대학교육 ▲교육현안/미래교육 ▲교육관의 9개영역 총 55(+2)문항으로 이뤄졌다.

한 교육전문가는 “설문조사 시점이 지난해 8~9월임을 감안하면 현재 정시선호현상은 더욱 심화됐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8월부터 논란이 된 숙명여고 사건으로 마치 내신 1등급이 학종의 절대적인 지표처럼 곡해됐으며 올해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영향으로 학종에 대한 오해가 한층 증폭된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수시-불공정/정시-공정이라는 단순하고 잘못된 프레임이 고소득층의 대입기회를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고액 사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지방수험생 등의 대입 기회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수능 줄세우기식 공정성에 대한 환상.. 정량평가 대안 안돼>
최근 학종을 대상으로 하는 부당한 비판은 수능위주 전형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졌다. 수험생이 취득한 점수를 통해 줄세우기를 하고, 순위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구조가 오히려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방법인 것처럼 읽히는 사회 인식 탓이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수능은 사교육 유발효과가 크고, 부모의 경제력/사회적 지위 등 배경에 영향을 다른 전형보다 많이 받는다는 결과가 수없이 증명돼 왔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측의 근거처럼 수능은 국가가 출제와 채점, 시행과 관리의 일체를 관장한다는 점에서 객관성이 높은 전형이다. 특별한 전형대비 없이 기출문제 풀이 등의 학습을 통해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동아줄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시는 획일적인 선발방식과 지나친 점수경쟁, 학생 줄세우기를 통한 서열화 논란 등 문제점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가에서 제공한 수능점수를 통해 일괄적 선발을 할 수밖에 없어 대학의 특색이나 수험생의 전공적합성, 진로에 대한 확고한 꿈 등이 무시되는 천편일률적인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내신 등 학생부가 미미하게 반영돼 고교현장이 황폐화되고, 단편적 지식암기 위주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뒤따랐다.

수능위주 정시확대의 목소리에는 등수나 점수로 수험생의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이 기반한다. 수험생의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일괄적 시험을 통해 석차를 나누는 방식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견해다. 대입전형이 교육정책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은 한국 교육현실에서 수능위주 정시가 그나마 군소리 없는 전형으로 인식된 데서 나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수능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어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없이 수험생이 취득한 점수가 곧 실력이라는 입장을 기반으로 한다. 고교 3년의 교육과정이 수능점수를 높이기 위한 시기로 절하되고, 단 한 번의 시험에 국가 전체가 매달리는 비정상적 상황도 공정성과 객관성의 환상 아래 희석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수시가 축소되고 정시위주전형으로 입시가 회귀하면, 가장 쾌재를 부를 집단은 사교육업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과거부터 학생들을 한 강의실에 모아두고 끊임없는 문제풀이식 교육을 통해 입시성과를 냈던 사교육업체들은 현재도 정시로 수험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지속해오고 있다. 문제는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많을 수록 정시의 합격률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의 동아줄이었던 정시가 이제는 고액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수험생들은 넘보기 조차 어려운 전형이 됐다는 분석이 계속되는 이유다.

<일관성 없이 표류하는 대입전형.. 수요자 불안 키워>
대입전형은 대학이 어떤 학생을 선발하느냐에 대한 자율권 보장 측면보다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를 겪어왔다. 수능9등급제는 과도한 성적경쟁과 점수 줄세우기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배경으로 했고, 대입전형간소화 정책은 고교교육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바탕으로 했다. 대학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입에 목매는 상황에서 대입전형에 사회적 요구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대입전형의 변화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관계자는 “우리 교육은 외부 비판에 대해 내성이 없다. 교육계 내부의 논의 없이 사회적 아젠다에 의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1994년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준비/개발기간을 거쳐 수능이 도입됐다. 무조건적인 암기위주 시험에서 벗어나 수능은 사고력 중심의 평가를 지향했다. 수능은 이후 2002년 백분위, 표준점수 제공, 영역별 성적9등급제 도입으로 성적의 등수화를 억제하고, 2008년에는 아예 점수가 미표기돼 영역별 등급만 표시되는 등 변화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수능위주 정시의 획일적 선발방식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다양한 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가 도입됐다. 수시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의 학생을 수능점수에 상관없이 모집하는 점과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2002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수시는 대학 모집인원 대비 비율이 29%에서 현재 70%를 넘어서기도 했다. 대입 전형의 중심이던 수능의 비중을 수시모집이 대신 차지한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출발한 학종이 대입에 도입된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대판 ‘음서제’라거나 ‘학부모종합전형’과 같은 오명이 붙기 시작했다. 학종에 대한 오해를 기반으로 수백만원짜리 학종컨설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학종에 대한 비판은 실제 학종이 갖는 문제점보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고 입시경쟁이 치열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한몫한다. 

대학서열화에 따라 학생의 인생이 진학대학과 직결된다고 여기는 현실에서 모든 수요자를 만족시킬 교육정책 마련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교육당국의 '정책뒤집기'는 도가 지나쳤다는 분석과 함께 수요자들의 불안을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능 절대평가 도입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교육부는 절대평가 전환을 위해 지난해 8월 대입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여론의 반대로 1년 유예했다. 정시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여론이 악화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교육부 차관이 상위대학들을 압박해 ‘정시확대’를 주문하면서 대입혼란의 여진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와 외고의 일반고 전환도 마찬가지였다. ‘고입 동시실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지난해에도 원서접수를 앞뒀던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교육계에서는 급변하는 교육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는 수요자들을 위해 정책일관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교육전문가는 “표류하는 대입전형으로 인해 수요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여러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 자체가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입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닿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수요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도 이런 배경 위에 있다. 과거에 획일화되고 단순했던 방법이 이해하기 쉽고,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시확대가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을 생각하면 이런 여론의 방향이 결코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정부에서는 교육에서 정치를 분리하는 정권초월 국가교육위를 설립하는 등 정권마다 뒤집기를 반복하는 대입전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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