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OECD 국가 통계에서 꼴찌를 차지하는 항목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짧은 수면 시간이다. ‘잠 부족 국가’로 일컬어질만큼 많은 사람들이 수면 결핍 상태에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비교가 되는 나라들보다 오랜 시간 깨어나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과 자본의 빈곤 속에서도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졸린 눈을 비비고 잠자는 시간을 아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덕분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기축구회’나 ‘새벽기도회’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만 봐도 우리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학생들의 심야 학원교습을 법으로까지 금지해야 할까?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변하고 있다. 무게 중심은 웰빙과 건강 그리고 삶의 균형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성공과 경쟁을 위해서라면 수면과 휴식의 희생은 당연히 여기던 풍조는 더 이상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더 어려운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는 동시에 공부를 둘러 싼 치열할 경쟁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흡사 엔진의 출력은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유해 가스의 배출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는 다운사이징 기술과 같은 혁신과 지혜가 필요하다. 수면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미리 알고 예방하는 한편 시간 대비 더 효과적인 수면 비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모든 연령층에서 다양한 피해를 초래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 일년 국가예산과 맞먹는 연간 450조원 이상의 사회적 손실과 비용이 수면관련 문제로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한참 공부에 매진하는 청소년에게는 성장에 지장을 주고 체중증가와 비만, 면역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실수가 잦아지고 수행능력과 주의력이 저하된다. 지속적인 수면 부족은 우울증과 자해, 자살 시도 등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시적으로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하루 이틀 잠을 설친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면 부족이 차곡차곡 누적되면 어느 순간 한번에 갚기 어려운 수면 부채(debt)가 된다. 더 이상 한번에 부채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우리의 뇌와 몸에 손상과 해를 끼치는 것이다. 따라서 수면 부족이 발생하면 가능한 빨리 부족분을 보충해야 한다. 빚에는 당연히 이자와 연체료가 따른다.

수면 부족을 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야 할까?’ 수면시간에 획일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개인차를 인정하여 범위로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 수면의학회와 수면연구회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9~12시간, 중고생은 8~10시간 그리고 성인은 7~9시간이 권장수면시간이다. 이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우리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권장이 아닌 허용수면시간의 최저선을 소개한다. 대략적으로 중고등학생 기준 7시간, 고3은 6시간 정도를 최소한의 수면시간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보다 잠을 적게 자지 않아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잠자는 시간 대비 효과 좋은 수면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잠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 아래에 간단히 그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양질의 수면을 위해서 잠자리에 들고 30분 이내에 잠들 수 있도록 한다. 잠자기 직전에는 너무 밝은 빛이나 모니터와 핸드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을 피한다. 숙면을 방해한다. 잠에서 깰 때는 아침 햇살을 듬뿍 쬐어 생체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을 유지한다. 침실 온도는 15도에서 20도 정도로 약간 서늘한 편이 좋다.

둘째, 평일이나 주말이나 비슷한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Routine 관리를 한다. 같은 수면시간으로 더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평일 내내 쌓인 수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콜로라도 대학에서 발표했다. 매일 두 끼만 밥을 먹고 주말에 6끼를 몰아서 먹기보다는 하루 세끼를 꾸준히 챙겨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셋째, 적절한 수면시간의 기준은 Output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다음날 기억이 더 잘나거나 수업과 공부의 효율이 좋아지는 최적의 시간을 찾는다. 얼마나 늦게까지 버티고 머리 속에 공부를 집어넣을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간단한 Sleep Diary를 작성하면 얼마나 잠을 잤을 때 다음날 두뇌 기능이 최고에 이르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적절히 활용하기에 따라서 잠자는 시간은 눈을 감고 공부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버드와 맥길 대학의 공동 연구는 어려운 문제 해결에 잠이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저녁에 공부하고 잠을 잔 후 다음날 시험을 보는 그룹과 아침에 공부하고 저녁에 시험을 보는 그룹으로 나누어 테스트한 결과 가장 어려운 문제의 정답률이 각각 93퍼센트와 69퍼센트로 잠을 자고 시험을 본 그룹이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났다. 특히 24시간이 지난 후의 테스트에서는 격차가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수면 시간을 낭비가 아닌 창조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경과학자인 루이스 교수는 수면과 창의성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렘(REM)수면 때 해마와 대뇌피질의 긴밀한 연결이 끊어지면서 엉뚱한 상상의 영상인 꿈이 만들어진다.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하면 꿈에 반영된다. 렘수면에서 무작위로 꿈을 꿀 때 꿈에 나타난 무엇인가가 깊이 생각하던 문제와 비슷한 점이 있으면 특별한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창의적 도약'이라는 것이다. 케쿨레가 벤젠의 화학구조를 찾아 내고, 멘델레예프가 원소주기율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잠을 자는 동안의 꿈을 통한 깨달음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올해 세계 수면의 날 슬로건에 처음으로 Healthy Sleep의 문구가 등장했다. 질적, 양적으로 좋아야 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면의 역할을 강조했다. 건강한 수면을 통해 삶의 긍정적 변화를 추구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성장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에게 건강하고 충분한 수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잠을 자야 꿈을 꿀 수 있고, 건강한 수면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

대한민국의원/한의원 배재원 원장 medi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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