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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캔버스에 그리는 새로운 세상의 꿈

기사승인 2018.10.15  18: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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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마르크 ‘꿈’

독일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화가의 꿈을 안고 20세 때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학교 수업에 열중하던 1903년, 처음으로 방문한 파리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어둡기만 했던 독일 회화에 익숙한 그에게 화려하고 밝은 색채의 인상주의 회화는 완전히 새로운 예술이었다. 귀국 직후 모든 가르침과 규칙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카데미를 그만 두고 아틀리에를 구한다. 홀로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던 중, 1907년 두번째 파리 방문은 마르크의 작업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가 존경해왔던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자신의 모델로 삼게 된 것이다. 고흐가 그랬듯이 예술가를 순교자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고, 고흐의 화려한 색상에 눈을 떴다. 이후 마르크의 팔레트는 보다 더 선명해지고 붓의 터치는 강한 리듬과 동력을 띠게 된다. 

1910년부터 친구가 된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1887-1914)도 그에게 과감한 색의 사용을 독려한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빨강, 파랑, 노랑이 함께 하면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고 했다. 고흐와 고갱이 이미 보여주었듯이 색은 이제 자연의 색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성장하고 분출한다. 1912년에 본 이탈리아 미래주의 전시회와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역시 마르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낡은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가능하게 할 현대문명의 속도, 에너지, 움직임을 화폭에 그린 유파다. 에펠탑이 휘청거리고 지붕과 창문이 내려 앉는 들로네의 그림을 보며 마르크는 본질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허위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영향 속에서 그의 그림은 1913년 무렵 점점 더 주제와 사실적인 묘사에서 멀어져 부서지고 폭발하고 소용돌이치는 추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1900년대 초 독일 문화 예술계의 상황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암울했지만, 남부 도시 뮌헨은 달랐다. 연극공연과 새로운 책의 출판, 도시의 건설, 사방에서 몰려드는 화가들과 모델들로 예술과 문화의 꽃이 지지 않는 도시였다. 러시아인인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 1864-1941)가 새로운 예술을 찾아 옮겨간 곳도 바로 뮌헨이었다. 1911년,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결성한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에서 마르크는 전위적인 미술 운동의 선봉자 역할을 한다. 

한 여인이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푸른 말, 붉은 말, 노란색의 사자가 그녀를 중심으로 고요히 서 있다. 주변의 들판과 집도 그림의 가운데에 위치한 그녀의 머리 쪽으로 향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속에서 여인은 꿈을 꾸는 걸까? 그녀가 꾸는 꿈이 풍경일까? 전체적으로 비례와 형태를 고려하면 그녀 주변의 동물과 풍경은 실제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색면처럼 보인다. 마르크는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세 가지 색깔에 의미를 부여했다. “파랑은 남성이며 확고함, 정신력을 나타낸다. 노랑은 여성으로, 부드럽고 관능적이다. 빨강은 거칠고 무거운 물질인데, 결국은 다른 두 색깔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 그는 이 세 색깔을 적절히 조화시켜 난폭함을 억누르면서 따뜻하고 경쾌하면서도 차분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다. 마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는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파랑의 슬픔이 강해지고 결국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노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전적으로 색깔만을 표현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1912년 작품인 ‘꿈’은 그가 즐겨 그렸던 동물을 소재로 하면서 이미 형태가 상당히 단순화되고 기하학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에 속한다. 마르크는 1905년에 ‘죽은 참새’를 그린 이후 ‘수탉’(1906), ‘플라밍고’(1907), ‘뛰어오는 개: 슐리크’(1908), ‘원숭이’(1911) 등 온갖 동물들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숨결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1905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말(馬)’은 그의 그림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존재로서 캔버스에 등장하는 동물은 추하고 타락한 인간 세상이 회복해야 할 가치를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꿈’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킨 형태의 윤곽, 다양한 원색의 단색면으로 표현한 배경, 재현의 기능에서 벗어난 색깔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구상화에서 점점 추상화로 나아가는 마르크의 변화를 엿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업에서 형태는 점차 색면으로 무한히 분할되다가 1913년 12월에 첫 추상화, ‘구성 1’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에 그려진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은 마르크가 원하던 정신의 왕국일 것이다. 그는 “예술은 꿈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 몸을 맡길수록 내면의 진실, 꿈속의 삶 그리고 진정한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 어떤 의혹도 생기지 않는 그런 삶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했다. 1차 대전에 징집되었던 마르크는 자신이 소망하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1916년 전사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예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동부 전선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 ‘꿈 Der Traum’(1912, 캔버스에 유채, 100.5X135.5cm, 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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