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 바이올린협주곡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브람스 : 바이올린협주곡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20여 년 전 가을 초엽에 들른 함부르크는 스산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파리에서 노르웨이의 오슬로까지 1800km,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함부르크에 저녁 무렵 도착해 하룻밤을 묵었다.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유럽의 다른 대도시에 비해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없어 보였다. 창고 같아 보이는 우중충한 갈색의 건물들은 찌푸린 날씨 때문인지 더욱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곧바로 이 도시를 떠나도 아쉬울 게 없을 듯했지만 좋아하는 음악가의 흔적은 꼭 느끼고 싶었다. 다음 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호텔 주인에게서 건네받은 주소를 가지고 브람스박물관을 향해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4~5층짜리 갈색 건물들이 늘어선 한적한 거리 한 곳에 브람스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렵사리 찾아낸 박물관은 조용했다. 그리고 문은 닫혀 있었다. 월요일엔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휴장한다는 사실을 안내문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요즘처럼 쌀쌀한 가을 한복판엔 브람스를 자주 듣는다. 그의 음악엔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우수와 고독함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고뇌가 가득 담겨있다. 그렇지만 쓸쓸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가을의 들판에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볼 때처럼 맑고 시원한 음색들이 함께 어우러져 브람스만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 속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브람스의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함부르크의 분위기, 가난한 어린 시절, 아버지보다 무려 17년 연상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 평생 독신으로 지낸 외로움, 그리고 클라라 슈만을 향한 연정... 그의 음악 속에서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깊은 성찰과 함께 애잔한 그리움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는 183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음악 기초를 습득하고 7세부터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14세부터는 작곡도 하기 시작했으나 워낙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어려서부터 술집에서 피아노연주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20세가 되던 1853년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독일 내 다른 지역으로 떠난 연주여행은 브람스에게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하노버에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주자 중 한사람인 요하임([Joseph Joachim,1831~1907)을 만나 우정을 나눴고, 요하임의 추천서를 들고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찾아갔다. 독일 최고의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슈만은 20세 젊은 청년의 뛰어난 재능을 간파하고 음악잡지에 브람스 소개 글을 실어 새로운 천재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브람스는 두 사람의 은인 슈만과 요하임에게 평생 고마움을 간직하고 보답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슈만이 우울증으로 라인강 투신자살을 시도한 이후 죽는 날까지 2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켰고, 사후에도 미망인 클라라와 그의 7명의 자녀들을 보살폈다. 요하임에게는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바이올린협주곡을 헌정했다.

브람스는 단 하나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남겼다. 작곡에 항상 신중을 기했던 브람스는 43세가 되어서야 완성한 ‘1번 교향곡’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에 고무되어 자신감과 함께 창작력이 왕성해진 듯하다. 이듬해인 1877년 바이올린 명인 사라사테의 연주에 감명받아 바이올린협주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우정을 지속해 온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문을 구했으며, 두 사람은 몇 개월에 걸쳐 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1878년 말에 이르러서야 브람스는 곡을 완성했고, 1879년 1월 1일 라이프치히에서 요하임의 바이올린 독주와 브람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다. 연습이 불충분했음에도 연주는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요하임은 이 작품을 자신의 주 레퍼토리로 삼아 유럽 여러 곳에서 연주를 하여 세상에 알렸다.

브람스의 음악들은 무겁다. 선율이 감미롭거나 밝고 경쾌한 맛이 없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바이올린협주곡도 예외가 아니다. 베토벤, 멘델스존의 협주곡과 함께 소위 ‘3대 바이올린협주곡’으로 손꼽힐 만큼 명곡으로 분류되지만 친숙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베토벤, 멘델스존,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브루흐 등 여러 바이올린협주곡들의 선율을 따라 흥얼거리게 되었을 때도 브람스는 어려웠다. 감동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지루하고 아득하게만 들렸던 음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친숙해진 것이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듣는 협주곡으로 남아있다. 특히 한가로운 가을 저녁, 책과 와인과 함께하는 브람스는 최고의 사치스러움이다.

1948년 5월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의 음악당에서 29세의 젊은 여류 바이올리니스트가 북독일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했다. 파리음악원을 수석 졸업하고 16세의 어린 나이에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27세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1919~1949)다. 1년 후인 1949년 10월 28일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가던 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우아함과 정열을 함께 지닌 20세기 최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당시 전 세계를 열광시킨 그녀는 몇 장의 음반만 남긴 채 전설이 돼버렸다. 70년 전 함부르크에서의 실황 연주는 녹음되어 음반으로 남았다. 모노 녹음이지만 음질이 좋아 느뵈의 고결하면서도 열정적인 바이올린 음색은 찬란한 빛을 발한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Brahms : Violin Concerto in D, Op.77 (지네트 느뵈, 1948년 함부르크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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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FM2_krep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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