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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나는 한 송이 꽃처럼 시들었네

기사승인 2018.10.01  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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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로데 ‘무덤에 묻히는 아탈라’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해안 도시 생말로(Saint-Malo). 바닷가 서쪽 끝자락에서 마주 보이는 무인도에 프랑스 초기 낭만주의 소설가인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768-1848)의 묘지가 있다. 만조(滿潮)때 완전히 고립되는 작은 섬이어서, 깜깜한 밤이면 절대적인 고독을 벗삼아 ‘바다와 바람 소리’만 듣고 있을 것이다. 죽어서도 영원히 바라보는 아메리카 대륙에 샤토브리앙이 첫발을 디딘 것은 프랑스 혁명 후인 1791년. 대자연과 인디언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와, 자연에 대한 묘사나 사랑의 고통, 삶의 비애를 토로하는 글들을 발표한다. 몽상적인 우울감이 짙게 밴 그의 글은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동시대 화가 안-루이 지로데가 그의 작품 ‘아탈라(Atala)’를 화폭에 옮겼다.  

아탈라는 인디언 피가 흐르는 기독교도 아가씨다. 출생시 생명이 위태롭자 아이의 순결을 영원히 신께 바치겠다고 맹세하여 아이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년이 된 아탈라가 인디언 청년 샤크타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다. 사랑에 몸을 맡길 수도, 사랑을 버릴 수도 없다. 숲 속에서 함께 도피 생활을 하며 잠시 행복에 젖기도 하지만 천둥번개를 만나자 “마음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을 느낀다. 결국 죽음을 택함으로써,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순결에 관한 자신의 운명적 약속을 지키려 했다. 그림은 그녀를 매장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손에 십자가를 든 아탈라는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다. 흰 옷은 순결함과 죽음을 동시에 나타낸다. 샤크타스는 아탈라의 육신을 놓지 않으려는 듯 온 몸을 웅크리며 그녀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다. 야성적인 힘이 넘치는 등과 팔에서 제어할 수 없는 열정과 억눌린 고통이 배어나온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서는 사랑을 잃은 자의 망연자실과 분노가 느껴진다. 두 눈을 꼭 감고 십자가와 아탈라의 죽음을 완강히 거부한다. 반면, 사제와 아탈라의 몸은 움푹한 그릇 모양을 이루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가득 담긴다. 동굴 벽이 환하게 빛난다. 땅을 향한 채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샤크타스와 대조적이다. 

지로데의 이야기 구성이 뛰어나다. 같은 주제를 다룬 세자레 뮤시니(독일 이탈리아계, 1835), 루이 몬로이(멕시코, 1871), 로돌포 아모에도(브라질, 1883) 등이 임종의 순간만을 그린데 반해, 지로데는 죽음의 애도와 무덤파기, 매장이라는 세 단계의 이야기를 하나로 보여준다. 이 방법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집약적으로 주제를 형상화한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죽음을 애도하는 샤크타스와 매장 의식을 경건하게 치르는 사제가 아탈라의 몸을 양쪽에서 붙잡고 끌어당기는 구성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갈등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소설 ‘아탈라’에서 풍부하게 그려졌던 인디언식 머리장식이나 진귀한 식물 등, 이국적인 정서는 최소화했다. 미술사학자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이 지적했듯이, 그림은 아메리카 대륙의 ‘야생적 매력’이 넘쳤던 소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지로데는 대표적인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제자다. 정확한 데생, 안정적인 구성, 조화롭고 부드러운 색채 등은 스승을 그대로 닮았다. 군더더기가 없고 절제미가 탁월하다. 그러면서도 다비드나 동료 화가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따뜻하고 신비로운 빛이 작품에 가득 흐른다. 고요히 비추는 빛 아래에 10여년 후 만개할 낭만주의적 서정과 시적 감흥이 일렁인다. 

예술 작품은 창조되는 순간 예술가의 손을 떠난다. 샤토브리앙과 지로데가 그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샤토브리앙은 소설 ‘아탈라’를 통해, 몽상과 고독은 정신을 좀먹을 뿐, 진정한 구원은 종교만이 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이에 반해 독자들은 주인공의 사랑과 죽음, 비탄과 절망에 함께 울었다. “나는 한 송이 꽃처럼 시들었네. 들판의 풀처럼 말라버리고(J’ai passé comme une fleur ; j’ai séché comme l’herbe des champs.” 죽은 아탈라의 영혼을 밤새 위로하며 사제가 반복했던 욥(Job)의 한탄을 지로데가 동굴 벽에 새겨 두었다. 불가능한 사랑 앞에서 괴로워하며 죽음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고통으로 짓눌리는 주인공들의 탄식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소설이 나온 7년 후에 그려진 이 그림을 작가가 무척 좋아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뜻을 화가가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 듯 하다. 지상에서의 찰나적인 꽃은 시들지만 천상에 이르는 꽃은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해했을까? 두 예술가는 갔지만 그들의 작품은 동굴 밖에 의연하게 피어난 꽃처럼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안-루이 지로데(Anne-Louis Girodet, 1767-1824), ‘아탈라의 매장 Atala au tombeau’(1808, 캔버스에 유채, 207x267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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