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학생인권 소신 어디로'..'학생 억울함 외면' 비난 봇물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시민/학생 청원 1호 답변대상인 대성고 학생의 청원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 중"이라는 면피성 답변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조 교육감은 대성고의 일반고 전환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주장에 대해 “(일반고 전환은) 학교 측 자발적 의사결정으로 시작됐다”면서 “교육청의 ‘자사고 일반고 전환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고, 교육청은 법을 지켰다는 입장만 유지하는 ‘면피성 답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학생 억울함은 외면한 채 행정소송을 의식해 적법하다고 반박한 부끄러운 행태라며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을 강조한 조 교육감의 평소 표방했던 소신과 어긋난 답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고 전환 논란을 겪고 있는 고교생이 직접 작성하고 학생 1000명의 동의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청원이지만 교육계 수장으로서 조 교육감의 답변은 학생들에게 납득할만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장은 "시민단체나 학부모가 제기한 청원도 아니고 학생들이 민주적인 의사표현 과정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인데 학생들에게 법대로,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답변은 교육계 어른으로서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대성고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라지만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답변에서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하다못해 일반고 전환에 대한 학생 학부모 의견수렴이 제대로 됐는지 점검이라도 해봐야 되는 것 아니냐"며 "학생의견 수렴을 중시한다며 추진하는 교복공론화가 '보여주기식'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이유"라고 일갈했다. 

이날 대성고 학부모회 관계자는 "학생들의 공개청원 답변을 내놓은 조 교육감의 민낯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입장문을 공개했다. 학부모회는 입장문을 통해 "소위 어른이자 학자였고, 한때 선생이었던 사람이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 한 마디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우리나라 교육의 어두운 현실을 목도했다"며 "조 교육감이 정말 소통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말 의견수렴이 없었는지 직접 확인했어야 한다. 학생들의 청원 핵심은 학교에서 전혀 일반고 전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교육청이 청원게시판을 개설한 이후 조 교육감이 청원에 답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감 답변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청원의 경우 1만명 이상, 학생청원은 1000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대성고 학생의 청원은 1185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을 낸 학생은 “왜 학생을 희생양 삼아 자사고를 폐지하느냐”면서 “학교는 일반고 전환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지도 설명하지도 않았고, 교육청은 자사고 지정취소에만 관심을 두고 학생의 억울함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시민/학생 청원 1호 답변대상인 대성고 학생의 청원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 중"이라는 소극적인 답변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사진=3일 조희연 서울교육감 청원답변 영상 캡쳐.

<조 교육감 “청원으로 보기 어려워”.. “법대로 진행중”>
조 교육감은 3일 오전 공개한 답변영상을 통해 “오늘(3일) 답변드릴 1호 대성고 학생 청원은 엄밀하게 보면 청원으로 수용하기 어려워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소통의 기회로 삼고자 학생 여러분이 제기한 질문에 답변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조 교육감은 “학생들이 이 청원제도를 관련 법령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 중인 교육행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계기로 삼았다”며 “학생이 청원제도의 의미를 너무 확대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일반고 전환 추진과정에서 학생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 “학교가 나름대로 설명하고 학생과 학부모 이해를 구하고자 노력했으나 공감을 얻지 못한 것 같다”며 “교육청은 학교법인이 제출한 자료의 적법성을 판단하고 이에 기초해 정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조 교육감은 일반고 전환으로 재학생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반고가 된 대성고에는 5년간 예산 총 10억원을 지원하는 등 행정/재정지원으로 자사고보다 특색 있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다양화’가 아닌 ‘수평적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번 답변이 부족해 학생들이 토론을 요구할 경우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영상답변 외에도 추가 서면답변을 통해 고교체제 개선과 관련한 교육감의 생각을 진솔하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성고는 서울 은평구 소재 남학교다. 2009년 광역단위 자사고로 지정돼 2011년부터 자사고로 운영해왔다. 7월26일 자사고 운영 8년 만에 교육청에 자사고 지정취소 신청서를 접수했다. 지난달 20일 교육청은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 심의와 청문을 실시한 결과 대성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요청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최종 동의할 경우 대성고는 내년부터 일반고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다. 

<대성고 학생 학부모, 교육감 상대 행정소송 제기>
대성고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일반고 전환에 반발하며 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30일 대성고 학부모회에 따르면 학생 135명과 학부모 255명 등 390명으로 이뤄진 소송인단은 29일 서울행정법원에 조 교육감을 상대로 자사고 지정취소처분 취소소송과 관련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정부의 자사고 외고 폐지정책으로 일부 특목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한 가운데 학생 학부모가 행정당국을 상대로 낸 첫 소송이다. 학부모들은 일반고 전환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의견수렴 없이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부모회는 지난달 29일 교육부 장관 앞으로 ‘부동의’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송인단은 학교법인과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회 관계자는 “학교와 법인은 물론이고 교육청까지 학생과 학부모들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일반고 전환을 강행했다”며 “대성고 학부모들은 지난달 17일 학교측이 학부모회에서 일반고 전환을 통보한 이후 지금까지 40여 일간 반대의사를 비롯해 절차상 문제 등을 제기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수렴 없는 대성고의 일반고 전환은 모호한 법령을 핑계 삼아 학생들을 볼모로 강제 추진된 전형적 ‘갑질’”이라며 “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의 포퓰리즘 공약 실현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철저히 차단한 채 대성고 구성원들을 목적달성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성고 1,2학년 학부모 430명은 등록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 일반고 전환에 대한 강한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교육청의 폐쇄적인 행정운영도 질타했다. 학부모회 관계자는 “교육부에 동의신청을 넣을 때까지 교육청은 단 한 번도 학부모에게 진행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당사자나 이해관계인으로도 대우하지 않았다”면서 “학생 학부모의 의견수렴과 동의는 필수가 아니라며 일방적인 절차를 진행했다. 정부와 교육당국의 자사고 폐지정책이 얼마나 대안 없는 무책임한 정책인지 알릴 것이고, 학생 학부모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청, ‘묻지마 행정’ 논란>
학부모들은 교육청이 대성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과정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지정운영위원회 회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앞으로 열릴 청문절차에 관해서도 안내받지 못했다. 교육청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학부모를 청문 당사자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지정취소 신청서 서식에 학부모 동의여부를 표시하는 란이 없다는 이유로 학부모 동의가 필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의견 수렴을 중시한다던 평소 조 교육감의 행보와도 어긋난다. 7월말 교육청은 불편한 교복을 편안한 교복으로 개선하겠다며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을 발족했다.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는 교복 개선마저 공론화로 처리한다던 서울교육청이 일반고 전환이라는 첨예한 사안에 대해선 학부모 의견 수렴 없이 ‘묻지마 행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교육청의 폐쇄적인 행정운영은 앞서 일반고 전환 사례를 겪은 부산교육청 강원교육청과도 상반된다. 내년부터 일반고 전환이 확정된 부산국제외고의 경우 교육청 지정운영위원회 회의와 청문과정에 학부모가 모두 참석했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법인이 지정취소를 신청한 경우 당사자는 학부모가 된다. 청문은 행정절차법상 피해 당사자의 소명을 듣는 자리로 청문과정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강원외고는 지정운영위원회 회의 결과 2022학년까지 외고 지위를 이어가기로 했지만 전환을 신청하기까지 다양한 통로로 학부모 의견을 수렴했다. 강원외고는 일반고 전환 신청서에 학부모 동의비율이 포함된 의견수렴 자료를 포함해 제출하기도 했다.  

과거 조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무리하게 단행한 전례가 있다. 2014년 10월 서울청은 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운영평가를 실시한 뒤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신일고 숭문고 등 자사고 8곳을 지정취소 대상 학교로 지목했다. 이중 신일고와 숭문고는 자사고 지정취소를 2016년까지 2년간 유예한다고 밝혔으며 나머지 6개교에 대해서는 지정취소 처분을 내렸다. 하루아침에 자사고 6곳의 지정이 취소된 사건을 두고 학교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상당한 반발이 일었다. 

당시 교육부는 서울청의 자사고 지정취소가 교육감의 재량권을 넘어선 처분이라며 지정취소 처분을 교육부 직권으로 다시 취소했다. 이에 반발한 조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자사고 행정처분 직권취소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팽팽히 맞섰다. 이후 교육부가 시도교육감의 독단을 우려해 특목고 자사고 등의 지정 또는 지정취소 시 교육부 장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을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개정하면서 8개교 모두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달 대법원은 4년 전 조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감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새로운 교육제도는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시행돼야 하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시행되는 교육제도를 다시 변경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며 “옛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자사고 지정취소를 할 때 교육부 장관과 사전 협의하도록 한 것은 사전 동의를 받으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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