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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예술의 순례자, 고갱

기사승인 2018.07.30  12: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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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고갱 ‘설교 후의 상상’

흰 모자를 쓴 여인들이 재미난 구경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원을 이루며 둘러서서 씨름중인 두 사람을 보는 듯하다. 이긴 사람의 몫이 될 소가 축제의 흥겨움을 더해준다.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면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깊은 묵상 중이다. 우측 끝에 있는, 모자를 쓰지 않은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천사와 야곱의 싸움’에 관한 강론을 한 신부님이다. 고갱은 사과나무를 이용하여 그림을 대각선으로 나누고 왼편에는 현실을, 오른편에는 설교 후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렸다.

파리에서 제법 길게 체류한 덕분에 여러 도시를 다녀보았다. 로마, 피렌체, 비엔나, 그렌덴발트, 친케테레… 유럽 어디에서나 고유한 역사와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고대 유적지와 더불어 몇 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기도 하고, 천혜의 자연 속에서 한적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스산한 황량함으로 마음을 끄는 곳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들판이 그러하다. 에딘버러에 있는 고갱의 그림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차창 밖으로 을씨년스럽게 불던 바람, 메말라 보이던 나무들을 보니 자연스럽게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생각났다. 파괴적일지라도 영혼을 태워버릴 듯한 사랑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곳이라고나 할까… 다음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문명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고갱을 미술관에서 마주했다. 파리에서 브르타뉴의 퐁타벤(Pont-Aven)으로, 퐁타벤에서 타히티로, 다시 마르키즈 제도로 길을 떠났던 고갱이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설교 후의 상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으며 던진 질문들이다.

고갱은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풍경과 씨름은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네. 그래서 풍경 속의 씨름은 비례에 맞지 않게 작게 그렸네”라고 밝힌다. 이 말은 그가 인상주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인상주의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 속에서 인간의 눈이 포착하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서양 미술사를 계승하고 있다. 고갱은 몇 번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가했으나 곧 염증을 느끼고 “모든 만물은 서로 통한다고 믿는” 상징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상징주의자들에게 현상계는 불가지(不可知)의 신비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런 종합적인 사고로, 가시(可視)적인 것을 통해 내면적인 것, 주관적인 것을 나타낸다. 고갱은 꿈, 환영, 관념을 바깥 세상과 함께 표현하려고 했고, 여기에서 그의 ‘종합주의’가 탄생된다. 20세기 현대 미술이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색채와 리듬, 관념과 사상이 되는 토대가 그와 더불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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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스스로가 “예술은 예술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라고 밝히듯이 이 작품은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우선 일본의 우키요-에(Ukiyo-e 서민들의 풍속을 주로 그린 목판화)가 있다. 우키요-에는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인기를 끌면서 많은 화가들에게 회화에 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이 작품에도 대표적인 두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천사와 야곱의 싸움’은 호쿠사이(Hokusai)의 ‘스모 씨름꾼들’을 차용했고, 사과나무 대각선으로 공간을 나눈 것은 히로시게(Hirochige)가 자주 쓰던 구성이다. 붉은 색과 같은 강렬한 색상의 단면도 일본 판화의 영향이다.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가 먼저 선보인 ‘구획주의’ 역시 고갱의 양식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일본 판화, 원시주의,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등에서 영감을 받은 이 기법은 “평면적인 색조로 단순한 형태를 그린 다음, 어두운 윤곽으로 구획을 나누듯 표현하는 방식”이다. 구획을 나눔으로써 고갱은 바깥 세상의 재현에서 벗어나 내면 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설교 후의 상상’은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고갱만의 양식과 작품 세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천사와 싸우고 야곱은 절름발이가 된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하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퐁타벤으로 떠나기 전 고갱은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직장도 그만 두었을 뿐만 아니라 다섯 아이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외면한다. 평범한 삶을 박차고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교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천사와 싸우다 절음발이가 된 야곱과 비슷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까? 폴리네시아의 한 섬에서 마치게 될 그의 가파른 순례의 길은, 나비파, 표현주의, 추상화가 탄생되는데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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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설교 후의 상상 La vision après le sermon’(1888, 캔버스에 유채, 73 x 93 cm,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에딘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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