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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밝게, 즐겁게, 행복하게

기사승인 2018.07.02  14: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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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울 뒤피 ‘니스, 천사들의 해변’

유럽은 한국과 달리 겨울이 우기(雨期)다.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종일 어두운 날이 많은 데다 해조차 짧아 오후 4시면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일조량이 부족하니 맑은 날이면 카페의 테라스나 강둑, 어디서든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 살며 첫겨울을 지냈을 때, 그곳 사람들이 왜 툭하면 바캉스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1, 2월부터 벌써 여름 휴가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개인 형편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아름다운 쪽빛 바다로 유명한 지중해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곳이다. 20세기 초 중반에 남불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니스(Nice) 해안을 즐겨 그린 프랑스 화가가 있다. 바로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유쾌하고 행복감을 주는 색감으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그린 니스 해변 풍경이 더할 나위없이 시원하다.

짙푸른 바다에 돛단배가 두둥실 떠 있다. 산책로에는 혼자 또는 둘 셋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데, 몇 개의 선으로 대충 그려졌다. 왼쪽 말과 오른쪽 마차 바퀴의 주황색은 해안을 따라 펼쳐진 건물들의 지붕과 어우러진다. 노란색 바퀴는 둥근 지붕의 카지노로 눈길을 이끈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하늘과 바다, 산책로와 산, 모래사장까지 온통 파란색이다. 바다는 오른쪽으로 청색이 점차 짙게 그려져 파도가 출렁이듯 보인다. 모래사장은 흑 청색이며 대체로 맑은 하늘에는 군데 군데 옅은 보라색이 섞여 있다. 모래사장에 줄지어 서 있는 작은 나무들과는 달리 산책로에는 세 그루의 야자수가 하늘을 향해 큰 키를 뽐낸다. 흰색으로 다양하게 덧칠하여 표현한 구름은 분위기를 더욱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이 그림의 매력은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선명한 색채다. 뒤피는 “색깔이 곧 빛”이라고 믿었다. 파랑-주황, 보라-연두, 남색-노랑으로 이루어진 보색대비에서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그림 전체가 빛나는 듯하다. 작업방식은 독특하다. 우선 여러 색의 물감을 단일 색조로 칠한 다음 그 위에 데생을 한다. 그런데 형태의 윤곽이 색깔에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다. 크로키처럼 재빨리 그려져서 만화나 포스터, 책의 삽화처럼 가벼워 보인다. 그가 이렇게 데생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26년 우연히 부두를 뛰어가는 소녀를 보고, 형태와 색깔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이 좋은 예다. 마차와 지붕을 대강 색칠하고 산책하는 인물들을 바탕색보다 진한 선으로 간단히 그렸다. 발랄해 보이는 이 방식은 그가 즐겨 다루는 소재인 평범한 실내, 아틀리에, 바닷가, 경마장, 휘날리는 깃발, 음악회 등과 잘 어우러져, 휴식 혹은 오락을 즐기는 행복한 순간을 화사하게 보여준다. 들판에서 일하는 장면에서도 노동의 힘겨움이나 삶의 고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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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를 흔히 야수파 화가로 간주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야수파의 영향으로 평생에 걸쳐 밝고 선명하게 그린 것은 맞지만 어떤 유파를 만들거나 소속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데생, 수채화, 아크릴, 유화, 목판화, 석판화, 책의 삽화, 도자기 등 다양한 매체에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식이 장식예술에도 적합할 것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20년대에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Paul Poiret)의 권유로 벽장식과 섬유 디자인을, 1937년 만국박람회 벽장식 ‘전기의 요정’(파리시립근대 미술관), 1939년 샤이오 궁을 위한 ‘센강’(퐁피두센터) 등 다양한 작업을 했다.

2년전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니스의 해변 대로(La promenade des Anglais)에 난데없이 트럭 한 대가 질주했다. 불꽃놀이 구경을 위해 도로를 가득 메웠던 군중들은 영문을 모르고 혼비백산하여 몸을 피했다. 사상자가 300여명에 이른다는 뉴스를 접한 순간, 뒤피의 이 작품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해변의 평화로운 그림을 다시 보며 증오와 반목, 테러가 난무하는 세상에 예술은 너무 무력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은 “라울 뒤피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고’ ‘다르게’ 또, ‘새롭게’ 보도록 도와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지치고 위로가 필요할 때는 뒤피의 그림을 찾아보라. 거친 세속에서 훌훌 벗어나 짜릿한 해방감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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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니스, 천사들의 해변 Baie des anges, Nice’(1926, 캔버스에 유채, 50.80 x 40.64 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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