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이중지원 금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정부의 자사고 국제고 외고 폐지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자사고 등과 일반고의 중복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2월 전국단위 자사고 이사장과 학생, 학부모가 자사고 등의 전기 선발권을 박탈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헌법소원과 함께 제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다만 자사고 외고 국제고와 일반고의 고입 동시실시는 그대로 진행한다. 자사고가 일반고와 동일한 후기전형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했기 때문이다. 평준화 지역에서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이 일반고에 지원하는 학생과 달리 2개 학교 이상을 선택해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5항에 대한 가처분 신청만 인용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12월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일반고와 동시에 입학전형을 진행하지만 중3학생들은 일반고와 자사고 등에 모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 중3학생들이 또다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까지 8~11월 전기모집을 실시했던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입학전형이 올해부터 일반고와 함께 12월로 바뀌면서 고입 지원전략을 다시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불합격 시 일반고 배정에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는 지적까지 제기된 가운데 고입이 다시 바뀌게 되는 셈이다. 특히 중3학생들은 현재 논의 중인 2022학년 대입개편의 당사자이기도 한 탓에 급변하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교육부 학교혁신정책과 관계자는 “교육부는 헌재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에 따라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고입 동시실시는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진행한다”며 “평준화 지역에서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헌재의 가처분 인용 취지를 존중해 시도교육청과 함께 적절한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자사고 국제고 외고 폐지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자사고 등과 일반고의 중복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자사고 일반고 ‘중복지원 가능’.. 동시선발은 그대로>
헌재 재판관은 “2019학년 고교 입학전형 실시가 임박한 만큼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고 효력정지 이유를 제시했다. “본안심판이 명백히 부적합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자사고 지망생들의 학교선택권과 자사고 법인의 사학 운영의 자유가 침해되는지 여부 등이 본안심판에서 심리를 거쳐 판단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자사고 지원 후 탈락 시 일반고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재판관은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더라도 불이익을 감수하지 못하면 자사고 지원 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지원한 학생들은 불합격 시 일반고를 진학할 때 해당 학교군 내의 일반고에 진학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학생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고입 동시실시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전기모집과 후기모집으로 구분하는 현행 고교 입시에서 전기모집을 실시했던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후기모집 고교로 이동해 일반고와 동시에 선발한다는 내용이다. 기존 고입은 4월부터 11월까지를 전기로 예고 체고를 비롯한 과고 외고 국제고 등 특목고와 특성화고 자사고 등이 선발을 진행했다. 전기모집에 불합격한 학생들을 포함해 전기모집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은 12월중 일반고가 실시하는 후기 신입생 선발에 참여한다. 

헌재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부분은 고입 동시실시가 아닌 시행령의 이중지원 금지 조항이다. 개정안에서는 중3학생들이 후기모집에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할 경우 1개 학교만 선택해 지원하거나 일반고에 지원해야 한다. 자사고 등과 일반고의 이중지원을 금지한 것이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하는 경우 원서와 함께 ‘불합격 시 임의배정 동의서’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했다가 탈락할 경우 미달된 정원을 채우지 못한 일반고에 배정되는 셈이다. 일반고에 배정될 경우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이거나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일반고로 배정될 확률이 높다. 시행령 개정안 공개 당시 자사고 지원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지원자가 크게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다수 제기됐다. 물론 임의배정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미달된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추가모집에 계속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고입은 마무리 돼가는 시점에서 추가모집에 계속 지원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기 선발권을 박탈당한 자사고는 반격에 나섰다. 2월 최명재 민사고(민족사관학원) 이사장, 홍성대 상산고(상산학원) 이사장, 오연천 현대청운고(현대학원) 이사장 등 1세대 전국단위 자사고 이사장들을 포함해 자사고 지망 중학생과 이들 학부모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시행령 제80조1항에 명시한 전기 선발 고교 가운데 자사고를 제외한 부분과 제81조5항에서 자사고와 일반고의 중복지원을 금지한 조항의 위헌소지를 지적했다. 

청구인들의 변호는 28대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가 맡았다. 이 변호사는 “시행령 개정은 헌법이 규정하는 평등권,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를 모두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의 이유를 밝히면서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 등 학습능력을 무시하고 획일적 일률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헌법이 추구하는 평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이 신뢰보호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번호사는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자각한 김대중 정부 당시 정부 권유로 설립된 자사고를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폐지하려는 것은 헌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개정안 입법예고 기고 동안 교육부에 반대의견을 제출한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홍 이사장은 “전기 선발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당시 자립형사립고로 지정을 받고 자사고로 16년간 학교를 운영해왔다”며 “개정안에 따라 상산고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그 전과 달리 후기학교로 선발한다면 우리 법인의 자사고 제도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불합격자, 평준화 일반고 배정금지.. ‘교육형평성 어긋나’>
3월말 각 시도교육청이 2019학년 고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한 이후 자사고 외고 불합격자의 배정을 놓고 한 차례 더 논란이 일었다. 지역에 따라 평준화 고교의 배정을 허용한 지역이 있는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평준화 배정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각 교육청의 고입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경기 전북 충북 강원 제주 등 5개 지역 중학생들은 탈락 후 임의배정 동의서를 작성하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하더라도 불합격 시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배정될 수 없다. 집에서 먼 비평준화 지역 미달 고교에 지원하거나 ‘고입재수’를 택해야 한다. 이와 달리 전남 충남 경남 경북 등에서는 자사고 등의 불합격자를 포함해 추가모집을 실시, 평준하 일반고 배정을 허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에 따라 학교선택권을 달리하면서 평준화 배정을 금지한 자사고 외고의 반발과 함께 교육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경기의 한 자사고 교육감은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내용”이라며 “교육청의 결정은 자사고에 지원하는 것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자사고 말살정책의 일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고 싶은 학교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통학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원하지도 않은 비평준화 미달 학교의 추가모집에 지원하든지 재수를 하라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교육청들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탈락자에게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일반고 입장에선 불이익이 될 수 있다”며 “형평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경기교육청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평준화 지역 고교보다는 비평준화 지역 고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들의 선호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거리 배정 문제에 대해서는 “경기의 경우 대부분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과 붙어있어서 통학은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청의 해명에도 자사고 측은 즉각 반발했다. 평준화 지역에서 지역인재를 선발해온 일부 자사고들이 정원 미달을 우려해 지역인재를 없애거나 축소하기로 한 것이다. 경기 소재의 전국단위 자사고 외대부고는 올해부터 정원의 30%가량 선발하는 지역전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의 안산동산고와 전북의 상산고도 지역전형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의 한 중학교 학부모는 “지역전형으로 용인 학생들이 다른 학생에 비해 성적이 좀 떨어져도 외대부고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전형이 없어진다면 학생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전형을 준비해온 학생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대부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을 둔 또 다른 학부모는 “외대부고가 전국권 학교이기 때문에 일반전형에서는 어려워도 지역전형으로는 합격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준비해왔다”면서 “자사고를 후기고로 바꾼 것도 모자라 교육청에선 불합격했다고 동네 일반고에도 못 가게 한다니 자사고 지원을 막으려는 게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입 동시실시’로 인한 논란의 여파는 끊이질 않았다. 지난달 29일 상산고 총동창회는 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학전형 기본계획안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계획안 철회를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청의 결정은 교육감의 지위와 재량권을 남용해 지역인재들의 학교 선택권과 교육의 평등권을 심각하게 저해한 것으로서 명백한 역차별이며 위헌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전북에서는 적잖은 인재들이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자사고와 외고가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전국 인재가 전북을 찾는 경제적 사회적 유발 효과가 확인됐다”며 “잘못된 정책이 하루빨리 바로 잡혀 전북의 모든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마음 편히 지원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고입 1년 앞두고 정책변화.. ‘수요자 예측가능성 무시’>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위한 신호탄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일반고 특목고 등으로 나뉜 고교체제를 단순화하고, 고입을 동시에 실시해 향후 일반고로 전환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출범 이후 국정과제에서도 고입 동시 실시와 고교체제 단순화가 포함돼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체제 개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교육부는 선발시기 일원화에 대해 “폐지수순은 아니”라며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은 추후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공약사항인 만큼 일반고 전환 가속화에 무게가 실린다.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정책결정이 수요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현행 대입에서는 3년 전부터 입학전형을 예고한다. 정부는 대입 사전예고 시기를 이보다 앞당겨 사전예고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이 같은 입시기조와 달리 고입에서는 입시 1년 만에 내용을 바꾸면서 ‘정책부조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고입 동시실시는 대입사전예고제 강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정책”이라며 “선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도 없이 1년 만에 선발권 폐지를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 대입수요자는 수요자이고 고입수요자는 수요자가 아니라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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