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Ⅱ 미이수 신입생, ‘기초강의 의무수강’ 조치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서울대 공대가 내년부터 고교 과정에서 물리Ⅱ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물리 기본강의를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한다. 수능에서 과학Ⅱ 응시자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공학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7일 서울대와 한 언론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는 지난 5일 교과과정위원회를 열고 고교에서 물리Ⅱ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물리학’ 대신 ‘물리의 기본’이라는 과목을 이수하도록 규정했다. ‘물리의 기본’은 고교에서 물리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난도를 낮춘 강의다. 내년 신입생부터 물리학이 필요한 전공 분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무수강하도록 할 방침이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공대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물리Ⅱ를 배우고 들어오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 격차가 발생해 중도에 수강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물리의 기본’ 과목은 보충수업보다는 배경지식이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공대가 내년부터 고교 과정에서 물리Ⅱ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물리 기본과목을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한다. 수능에서 과학Ⅱ 응시자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공학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대에서 개설된 물리학 강의 중 학생들의 수강 중도 취소율이 15%를 넘는 강의 비율은 24%로 수학(7%)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수강 중도 취소율이 25%를 넘는 강의는 물리학과 수학이 각각 8%와 1%로 격차가 더욱 컸다. 

최근 3년간 서울대 이공계열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가운데 고교에서 물리Ⅱ를 수강하지 않은 학생은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대 신입생 1966명 가운데 물리Ⅱ를 수강한 학생은 1080명(54.9%)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특히 정시 입학생들 사이에서 물리Ⅱ를 배우지 않은 학생이 두드러졌다. 수시에서는 57.2%인 810명이 물리Ⅱ를 수강하고 입학했지만, 정시는 물리Ⅱ 이수자가 49.1%(270명)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리Ⅱ 수강자가 그나마 절반을 넘길 수 있었던 건 수시 때문이었던 셈이다. 

수시 입학생의 물리Ⅱ 이수 비율이 높은 것은 서울대가 수시 전체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선발하는 특징 때문으로 추정된다. 학종에서 비중이 큰 서류평가는 학생부와 자소서 등 제출서류 전반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종합평가다. 단순 내신성적의 우열을 따지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달리 학종에서는 학생들이 얼마나 학업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했는지까지 평가 대상으로 한다. 난도가 높아 기피대상인 물리Ⅱ에 응시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이익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들에만 집중하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시에 매진하는 경우에는 물리Ⅱ 응시 여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면접이 있는 사범대 의대 등의 일부 모집단위를 제외하면 철저히 수능 성적으로만 당락이 좌우되며, 물리Ⅱ 응시는 강제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3개 대체과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장 응시인원이 적고 상위등급을 받기 어려운 물리Ⅱ를 대비할 목적으로 고교 물리Ⅱ를 수강하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다. 

물론 전형특성에 따른 출신고교 유형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심화과목을 배우는 과고 영재학교 입학생들의 주된 서울대 진학루트는 정시가 아닌 수시다. 물리Ⅱ 이수비율이 높은 과고/영재학교가 대부분 수시에서 입학하는 것은 비율을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봐야 한다. 

서울대 내부에선 학부생 공학교육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연 ‘서울대 교육,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세미나에선 서울대 학부교육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유재준 교수는 학생들이 입시제도에 맞춰 중고교에서 입시에 유리한 교과만 선택해 배우는 현상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수능에서 대학 공학교육에 필수 교과목인 물리Ⅱ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전국에서 4000여 명으로 4년제대학 전체 공대 정원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는 지속적으로 과학Ⅱ 과목 이수를 권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2021대입 교과이수기준을 통해 과학Ⅱ 과목 이수를 권장했다. 심화되는 과학Ⅱ 기피현상으로 인해 이공계열 신입생들이 대학 수업을 소화하는 데 난항을 겪는 데 따른 것이다. 이전부터 과학Ⅱ 응시를 권장해왔지만 올해 명문화한 셈이다. 반면 과학Ⅱ 응시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압박으로 과학Ⅱ+Ⅱ 조합에 대한 가산점을 폐지하기도 했다. 과학Ⅱ는 과학Ⅰ에 비해 범위도 넓고 난이도도 높아 수험생들이 응시를 꺼릴 뿐 아니라 응시인원이 적어 응시인원에 따라 등급별 인원이 결정되는 현 상대평가 체제에선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공계열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는 서울대만이 아닌 전국 대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들은 최근 고교 때 물리Ⅱ를 배우지 못한 학생이나 수학과학 수준이 뒤처지는 학생을 위해 예비과정이나 기초과목을 개설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2012수능에서 전체 응시인원 대비 23.5%를 차지했던 과학Ⅱ 응시자는 매년 큰 폭으로 축소돼 가장 최근인 지난해 수능에선 1.2%까지 떨어졌다. 물리뿐 아니라 화학Ⅱ도 1.4%로 1%대를 기록했으며 생명과학Ⅱ는 3.7%, 지구과학Ⅱ는 4.3%로 나타났다. 

저조한 과학Ⅱ 응시비율은 ‘의대광풍’과 맞물려 있다. 서울대 의대가 아닌 타 대학 의대 진학을 목표하는 학생의 경우 굳이 학습량이 더 많고, 우수 수험생들이 많아 경쟁하기 쉽지 않은  과학Ⅱ를 선택할만한 유인이 희박하다. 난도 조절 실패, 우수 수험생 집중으로 만점자가 상대평가 2등급 기준인 11%를 넘어갈 경우 단 1문제만 틀리더라도 성적이 3등급으로 급락하는 위험도 있다. 최근 응시인원이 줄어들면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인원도 함께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교육부의 개편 유예 결정으로 새 교육과정과 엇박자가 예견된 2021수능 출제범위에서도 과학Ⅱ 출제여부를 두고 논란이 됐다. 당초 개편안에서는 과학Ⅱ를 제외하는 안이 있었지만 과학계를 비롯한 학계의 강한 반발로 2021학년 수능에서는 과학Ⅱ를 포함하게 됐다. 다만 현재 표류 중인 2022학년 수능에서는 출제 여부가 불분명하다. 지난 4월 교육부가 대입개편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하면서 함께 공개한 출제범위 안에서는 과학Ⅱ 출제여부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것을 예고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수능 출제과목을 유지하는 3안에서만 과학Ⅱ가 포함되고 나머지 1,2안에서는 과학Ⅱ과목이 모두 제외된다. 현행 수능을 유지하지 않는 한 과학Ⅱ는 출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과학계와 대학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과학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론이 높아 상당한 반발의견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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