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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사과, 이브와 세잔의 금지된 욕망

기사승인 2018.06.04  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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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잔 ‘정물화’ 

이브는 뱀의 꾐에 빠져 사과를 따는 바람에 아담과 함께 천국에서 쫓겨났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과’로 잘못 옮겼다고 한다. 오해이긴 하나 유혹을 못 이겨 따는 과일로 사과는 제격이다. 그리스 신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과가 등장한다. 트로이의 왕자 패리스가 아프로디테에게 건네는 황금사과는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명사수 빌헬름 텔은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진 사과를 맞춰야 했다. 이 일은 오스트리아의 식민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위스가 독립 운동을 하는 기폭제가 된다. 미술사에서는 사과로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세잔이 있다. 그는 무려 200여점에 이르는 정물화를 그렸고 그 대부분에 사과가 등장한다.

그림을 보면 가운데에 놓인 과일에 우선 눈길이 간다. 목이 긴 둥근 그릇에는 오렌지가 가지런히 담겨 있다. 약간 기울어진 접시는 앞으로 쏟아질 것 같다. 꽃 그림이 그려진 물병도 옆으로 기우뚱하다. 그런데 어수선하게 펼쳐진 식탁보에 가려져 있는 테이블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왼쪽에는 소파의 팔걸이와 가로목 같은 것이 보이지만 불분명하다. 오른쪽 끝에 살짝 보이는 것과 연결해 보아도 테이블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라면 가운데 부분에는 아무 것도 없고, 둥근 그릇과 접시는 허공에 떠있는 것 같다. 식탁보는 전체가 아래로 툭 흘러내린다. 그런 식탁보에 올려져 있으니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사과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인다. 뒤쪽의 푸른 색 꽃무늬 천은 또 뭔가? 빨간색과 오렌지색으로 이루어진 과일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외에 왜,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둥근 그릇은 정면, 그 옆의 접시와 가운데의 사과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視點)이어서, 여러 번 자리를 옮겨 가며 작업한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세잔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창문을 열기만 하면,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이 보여준 것과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빛과 그늘이 어우러져 영롱하게 반짝이는 과일의 형태를 관찰하길 좋아했다. 과일은 그들끼리 대화도 나누고, 심지어 설탕그릇에도 표정이 있고 영혼이 있다고 세잔은 생각한다. 그것을 포착해 어루만지고 달래주면서 정물화를 그린다. 인물 작업도 하지만 속도가 느린 그를 위해 몇 달씩 포즈를 취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독 부인의 초상화를 많이 남긴 이유는 그녀만이 묵묵히 모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그릴 때도 세잔은 모델의 아름다움이나 성격, 심리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포즈는 움직이려고 취하는 게 아니네. 저 사과처럼 가만히 있게나. 사과가 움직이는 걸 봤나?” 화상(畵商)인 앙브르와즈 볼라르의 초상화를 제작할 때 세잔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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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형태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면서, 르네상스 이래로 화가들이 견지해온 단일한 관점을 과감히 포기한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과 조금 전에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을 같은 화폭에 동시에 나타낸다. 르네상스 이론가인 알베르티(Alberti 1404-1472)는 ‘회화론 De pictura’에서 후대의 화가들이 따라야 할 원칙들을 세우고 있다. 회화가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이므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화가는 유일한 단 하나의 위치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가까운 것은 크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는 원근법이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입체적인 형태와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재현된 세계는 기하학적으로 구축해놓은 “현실의 환영”이지, 결코 실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아니다. 카메라나 광학 기구라면 모를까, 인간의 눈으로 본 대로 재현한 것도 아니다. 원근법은 우리의 눈이 두 개이고 곡면(曲面)이며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안구의 정중앙과 달리 바깥쪽은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단 한번만에 전체를 완벽하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무시한다. 화가들은 원근법을 배웠고 배운 대로 그려야 했다.

화가가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금지된 욕망이다. 삐뚤삐뚤하고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이는 세잔 그림의 역설은 자신의 눈으로 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는 데 있다. 그는 기하학적 원근법을 따르지 않고 수십 번 안구를 움직인 끝에 포착한 부분들을 몽타주처럼 이어 붙였다. 세잔의 이러한 작업은 알베르티의 가르침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며 ‘창문’을 깨트려 버린다. 그의 우직한 과감함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뿐 아니라 20세기 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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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세잔의 고향 엑상 프로방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도착하자 마자 그의 아틀리에부터 방문했다. 그가 영면에 든지 100년이 넘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과즙이 풍부해보이는 사과와 오렌지도 그대로였다. 과일은 물론 모조품이지만 금방이라도 그가 들어서서 그림을 그릴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브는 ‘사과’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다면, 세잔은 ‘사과’로  ‘캔버스의 천국’을 스스로 나와 ‘현실의 환영’을 폐기처분했다. 그가 작업하던 아틀리에는 그에게 천국이었을까, 지옥이었을까...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 Nature morte avec pommes et oranges’(1895, 캔버스에 유채, 74x 93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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