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갑갑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50대 초반의 여자 환자분이 짜증이 가득 찬 얼굴로 불편함을 호소했다. 맥을 보니 폐맥에 열이 가득 차 있다. 가슴 한 가운데의 전중혈을 눌러보니 매우 아파한다. 이 증상은 볼 것 없이 화병(火病)이다. 말하는 증상과 맥에서 나오는 반응, 전중혈의 압통 모두가 화병 때에 보이는 현상이다. 대화를 해보니 남편이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려고 한단다. 막내가 이제 중학생인데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단다.

폐에 몰린 화를 풀어주는 침을 놓으니 5분 이내에 숨쉬기가 편해졌다고 말한다. 오래되지 않은 화병이라서 두 번 치료로 증상을 완전히 없애 주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증상으로 기록된 병이 바로 화병이다.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1996년 화병을 ‘Hwabyeong’이란 문화관련증후군으로 지정했다. 양방 의사선생님들도 화병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화병을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를 반복적으로 참아서 생기는 증상’이라는 복잡한 설명보다는 울화병(鬱火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하기 빠르다. 화가 억눌려 생긴 병이란 뜻이다. 화병을 설명할 때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한국적인 정서와 연결시켜보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부모님과 연관된 상황은 불합리하더라도 참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억눌린 화병이 많이 생긴다는 것. 미국의 정신과협회에선 화병을 한국의 문화와 관련된 병이라고 등록한 이유이다.

화병을 조금 확대해 보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생기는 병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착하고 소심한 사람들에게 잘 생기는 병이다.

화병의 초기증상은 대개 한숨으로 나타난다. 가슴이 갑갑해지니 한숨을 쉬어야 가슴이 좀 편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증상으론 얼굴로 열이 달아오른다. 갱년기의 상열증상과 거의 같다. 그래서 상열감이 심한 갱년기 여성들은 화병도 의심해 봐야 한다. 그 다음으론 목부터 명치 사이에 뭔가 뭉친 덩어리가 있는 느낌도 나타난다. 이외에도 우울감, 불면, 식욕저하도 나타난다. 의욕이 떨어지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화병의 진단은 본인이 쉽게 할 수 있다. 가슴이 갑갑하거나 상열증상이 나타나는 등 화병의 증상이 있다면 임맥이라는 경락에 있는 전중혈을 꾹 눌러보면 된다. 전중혈은 누운 상태에서 두 젖꼭지의 정중앙이다. 화병이 심할수록 전중혈을 눌렀을 때 통증이 심해진다. 일부 환자들은 전중혈을 스치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한다.

화병의 치료는 어렵지 않다. 초기라면 2~3회의 치료로도 충분하다. 오래된 화병이라도 단순히 기운이 울체되어 있기만 하다면 침과 해울제 처방으로 쉽게 나을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기의 흐름이 울체되거나, 뭉친 상태의 병증에 쓰는 약재가 아주 많다. 병의 절반이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이란 7정(七情)에서 생긴다고 보고 이에 맞는 치료법을 정립해왔기 때문이다.
화병과 유사한 병으로 열병이 있다. 화병은 기운이 소통되지 않는 갑갑함이 동반되지만 열병은 단순히 열증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각종 염증에서도 몸 전체나 부분적으로 발열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실제로 바이러스나 감염 등의 상황에서 열이 날 수도 있지만 오장육부에 문제가 생겨도 열이 날 수가 있다.

60대 후반의 남자환자가 내원한 적이 있다. 정신병원으로 모시기 전 지인의 소개로 한의원에서 치료나 한 번 해보자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온 환자였다. 딸의 설명으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가신 분들이 보인다는 등 횡설수설해서 가족들이 보름 째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 변도 잘 보지 못하고 두통이 있고 안구의 충혈이 심한 증상도 있었다. 복진에서 대장에 변이 꽉 차 있는 증상이 확연해 변비를 먼저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처방을 했다. 약 복용 2일 후 환자의 집에서 난리가 났다. 변을 너무 많이 봐서 온 집안에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다는 것. “숯처럼 검고 딱딱한 변도 있었느냐”고 물으니 “있었다”고 했다. 장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변이 쌓여 있을 수 있느냐는 정도로 시원하게 변을 본 뒤에 환자의 증상은 급격히 호전됐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온 집안 식구를 깨우는 일은 그날로 없어졌고, 귀신이 보이는 증상도 사라졌다.

이 증상은 한의학 서적에는 많이 나온다. 현대인에겐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장에 열이 심해 변이 말라붙어 변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해서 대장의 열이 더욱 심해진 증상이다. 몸에 열이 생기면 당연히 위로 올라간다. 열이 심하게 올라가면 정신이 맑지 않고 헛소리도 하게 된다.

열이 머리로 과도하게 올라가서 생기는 두통도 있다. 대개는 편두통으로 나타나는데 위에서 말한 짜증, 눈의 빡빡함 등이 동반된다. 만성 기침 중에는 열로 인한 기침이 많다. 가장 흔한 것은 폐열로 인한 기침이다. 폐는 심장을 감싸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복부의 장기로부터 위로 올라오는 열들을 식히는 기능도 한다. 한마디로 호흡을 통해 외부의 찬 공기로 몸의 열을 식혀주는 공랭식 기관인 셈이다. 열을 적절히 식혀줘야 할 폐가 제 기능을 못해서 폐열이 쌓이면 답답해져 기침을 하게 된다. 기관지의 염증으로 인한 기침이 많지만 폐열로 인한 기침도 존재한다. 위열로 인한 기침은 더 고치기가 힘들다. 워낙 드문 증상이라서 한의사들도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열이 심해져 폐에 열이 차는 증상은 위를 치료해야 한다. 폐열을 빼는 치료로는 잠깐 좋아지고 다시 나빠진다.

/한뜸 한의원 황치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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