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구성 100명 권고안.. 실효성 의문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정책숙려제 1호 안건인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의 가닥이 7월 중순 잡힐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시민정책단’ 구성/운영을 담당할 위탁기관으로 엠브레인-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엠브레인은 시민참여단 구성을,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는 진행 과정을 담당한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는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를 담당했던 기관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시민참여단 일정을 감안하면 권고안이 7월 중순 도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책숙려제는 그간 교육정책이 ‘일방통행’이라는 지적에 따라 내놓은 대책이지만 보여주기 식의 시간끌기용 아니냐는 의심도 흘러나온다. 한 교육 전문가는 “논란이 되는 교육정책을 쪼개서 여론 수렴의 제스처를 취할 뿐, 선거가 끝나면 애초 의중대로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민정책참여단은 국민 중 100명 내외를 무작위로 추출해 구성한다. 학생(중3~고2), 초중등 학부모/교원, 대학 관계자,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국민 각각 20명 정도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시민정책참여단의 심도 있는 논의를 지원하기 위해 교육정책 모니터링단 조사와 온교육 사이트를 통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병행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앞선 4월 세부운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결과 수용성을 높이고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3의 기관으로 시민정책참여단 운영의 전 과정을 위탁한다”고 밝힌 데 따라 위탁기관을 선정했다. 이에 더해 운영 절차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과 점검도 국민참여 정책숙려제 선정위원회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시민정책참여단과 교육정책 모니터링단에게 제공되는 자료는 모두 공개하고, 추진 일정도 실시간으로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숙려제로 결정하기로 한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이 7월 중순 쯤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정책숙려제는 국민 100명 내외를 무작위 추출한 시민참여단이 권고안을 마련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무작위 국민 100명 권고안.. 실효성 의문>
국민 100명 내외를 무작위로 추출한 시민참여단이 권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그간 이미 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인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으로 비판에 몰린 교육부가 불통 지적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다. 6월선거를 앞두고 결정을 미루기 위한 시간끌기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교육부가 정책숙려제를 도입하는 데는 그간 현장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책을 내놓는다는 지적을 탈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해 말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 나온 직후 비판은 절정에 이르렀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청원이 쏟아지는 등 거세진 반대여론에 더해 여당까지 제동을 걸면서 불통 지적이 컸다. 이를 두고 한 교육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공개하기 전에 의견 수렴이 기본이고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현장에서 어떤 반발이 있을지, 그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책 수립의 기본이다. 아마추어가 아이디어 나오는 대로 질러보는 듯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숙려제 도입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팽배하다. 한 교육전문가는 “여론 수렴이라는 핑계로 정책 결정만 미루고 있다”며 “대입개편이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위, 공론화위 순으로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데 모자라 학생부 기재 개선마저도 하청을 내린 모양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 100명의 권고안이 교육 현장의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요식행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교육 전문가는 “무작위 추출이라고 해서 인사의 균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이들의 권고안이 실제 교육현장의 여론을 얼마나 폭넓게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일갈했다. 

여론이 반대한다고 해서 실제로 정책 철회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교육부 역시 여론과 정책의 불일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교육부는 “정책숙려제 결과와 최종 정책 결정이 다른 경우에 최종 정책 결정의 배경과 사유를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짧게는 30일부터 길게는 180일까지 논의를 거치고도 정작 여론과 정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논란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교총 역시 정책숙려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간 정책 결정의 문제점은 여론 수렴 부족이기보다는 여론을 균형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사전에 정해진 결정사항을 밀어붙인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책숙려제 도입으로 정책결정 과정만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교총은 "국가교육회의가 설치된 상황에서 시간과 프로세스가 더 길고 복잡한 정책숙려제까지 도입될 경우, 제도나 기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복 운영이나 행/재정적 낭비 등도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정위원회 인사 구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가 공개한 정책 숙려제 선정위원회 명단에 따르면 외부위원 9명, 내부위원 3명으로 총 12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된다. 해당 인사는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심준섭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박혜자 서울교육청 평생교육국장,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부원장(원장 대리), 신현석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김민희 대구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나명주 참교육학부모회 수석부회장, 안상국 경기도 장안중 학부모,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김영철 기획조정실장, 김태훈 정책기획관, 임창빈 대변인이다. 교총은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현장 교원과 교원을 대표한 교원단체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며 "선정위원회 면면을 보면 현장 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교원단체는 아예 배제돼있으며, 학부모단체도 중립적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립적/객관적인 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하지 못할 경우 '무늬만 정책숙려제'에 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부 따로, 수능 따로.. 이슈마다 논의주체 제각각>
정책숙려제의 실효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수능은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고 학종 핵심 평가요소인 학생부는 숙려제로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전형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고 서로 보완하기 위해서는 대입 제도 전반이라는 큰 틀에서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입 메커니즘 상 특정 전형의 개선방향은 다른 전형의 변화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한 전형의 영향력이 낮아지면 반대급부로 나머지 전형의 영향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수능이 절대평가로 변별력을 잃을 경우 대입에서 정시 영향력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학종 영향력이 더 높아지게 되는 식이다. 반면 학생부 기재요령 개선이 간소화로 귀결돼 학종 평가요소가 대폭 줄어들게 되면 대학들은 학종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반대급부로 정시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만일 수능 절대평가가 동시에 도입돼 수능 변별력이 낮아지게 되면 정시 비중을 늘리기 힘들어져 전형 간 엇박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교육 수요자들 역시도 이 같은 점을 인지하고 있다. 수능이 절대평가화돼 변별력을 잃으면 학종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학종 공정성 제고 방안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일부 안건만을 숙려제 대상으로 삼는 방식에서는 계속해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학종의 관점에서만 봤을 때도 학생부만 논의하고 추천서 폐지는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 역시 엇박자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인데, 더 큰 범주에서 학종과 수능 간의 엇박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고 지적했다. 

<학생부 개선.. 학종 무력화 우려>
교육부가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 마련을 1호 안건으로 선정한 이유는 학생부 일부 항목 요소가 사교육을 부추기거나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국민이 직접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제안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상곤 부총리는 지난해 “내년부터 고교 학생부 기재항목 등을 간소화하고 정량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육계에서는 과도한 기재사항 축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재사항이 과도하게 축소되면 학생부 하향 평준화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학생부 기재 수준을 끌어올리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기재간극을 줄이겠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오히려 고교 현장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학종 선발도구로서 학생부를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이 크다. 

글자수를 제한할 경우 학생부가 실적 위주의 나열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활동의 과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어, 결과를 내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과 학생의 발전 과정을 살피겠다는 당초 학종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2월 열린 3차 대입정책포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박재현 진해고 교사는 학생부에 제약사항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학생부 기재사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적지 말라’는 내용이 추가되고 항목별 글자 수 제한도 일부 항목에서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는 “항목 자체가 사라지면 해당 활동이 교육적 의미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현재 조건에서 학생 역량에 대한 정성 평가결과가 내신성적에 어느 정도까지 편차를 벌려줄 수 있을지, 정성평가를 가장한 내신평가가 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글자 수 제한은 역량 차이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박 교사는 “학생마다 역량이 발휘되는 활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항목별 기재방식과 글자 수 제한은 이러한 역량 발휘 분야의 차이에 대해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주게 된다”며 “유사항목의 통합을 통해 전체 글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을 통합하는 방안을 예로 들었다. 박 교사는 “독서활동은 다른 모든 항목과 연관되는데 굳이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역시, 학생마다 교과목별 역량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최근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시점에서 굳이 교과목별 글자 수를 제한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학생부에 대한 과도한 기재제한 논란은 2016년 서울대가 주최한 ‘샤교육포럼’에서도 논의됐던 사안이다. 당시 안성환 대진고(서울) 교사는 학생부를 평가도구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교사는 “학종의 취지가 충실한 학교생활인 만큼 학교생활을 기록한다는 교육적인 활용을 위해 학생부를 어떻게 기록하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글자수를 제한하는 것은 평가도구로서의 역할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적 위주의 나열이 될 수밖에 없고, 학생부 동질화로 이끈다는 지적이다. 

<학생부 기재사항 지적 왜 반복되나>
학생부 기재사항 간소화의 근거로 꾸준히 제기되는 기재사항 부풀리기 문제는 학종 평가에 대한 고교의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대학들은 그간 수상 실적, 동아리 실적 등이 학종의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닐 뿐 아니라 개수에 따른 가산점도 없다고 끊임없이 밝혀왔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교내상은 학생의 관심이나 학업능력을 뒷받침하는 정도로 활용된다. 학교마다 상의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별 상의 종류와 개수를 전부 비교하고, 개수에 따른 정량평가는 진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선방안에 사전 등록된 교내상만을 기재하도록 한 것은 강남권 고교에서 학종 때문에 교내상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해 교내상 수를 조절하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모든 학생들이 많은 상을 받는다면 교내대회와 수상 실적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조승래(더불어민주) 의원이 서울대 수시 합격자 5명 이상 배출한 102개 고교의 교내대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교내대회 입상과 학종 간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전국에서 서울대 수시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하나고(53명 이상)의 경우 1인당 교내대회 개최 수는 102개 학교 가운데 33위를 기록했고, 1인당 입상 수의 경우 72위를 기록했다. 하나고의 뒤를 이은 경기과고(52명 이상) 역시 대회 개최 수 20위, 입상 수 39위를 기록했다. 반대로, 교내대회 개최 수 3위, 입상 수 3위를 기록한 대전동신과고는 서울대 수시 합격자 5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교내상이 평가 지표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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