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엠마오의 순례자들’ 

“그림에 몇 명이 있어요?” 유심히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 전시실을 지키고 감독하는 직원이다. 북향의 서재였던 방이라 어두운 데다 그림도 작고 밝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은 확실한데 물어보는 의도를 짐작해 보니 한두명이 더 있을 것 같아 바짝 가까이 가 보아도 소용없었다. “세 명뿐인데요.”라고 하자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머지 한 명이 어디에 있는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와서 책을 뒤져 보고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작품은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순례자들’(1628) 이다. 파리에 있는, 작지만 알찬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Musée Jacquemart-André) 소장품이다. 

렘브란트가 화폭에 담은 것은 신약 성서의 누가 복음에 나오는 일화이다. 두 제자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를 길에서 만났는데 알아보지 못했다. 함께 길을 가다가 저녁을 먹던 중, 식탁에서 예수가 빵을 막 나누려고 할 때, 손에 난 못자국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자 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예수의 부활과 현성용(顯聖容 예수가 거룩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일컫는 말)의 신비를 보여주는 일화로,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이다. 

그림을 보면 우선 환한 빛을 받으면서 정중앙에 위치한 인물에게 눈길이 간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와 얼굴 표정에서 공포에 가까운 놀람이 느껴진다. 그의 눈길을 따라 오른쪽을 향하면 빛을 가리고 앉아 있는 거대한 어둠이 보인다. 비스듬히 앉은 자세와 머리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이어지는 실루엣이 그 어떤 빛도 뚫을 수 없는 짙은 암흑을 이루고 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인지도 잘 보이지 않고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는데, 그것이 빵인지도 불확실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상세히 묘사되지도,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그의 존재가 그림 전체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좌측 안쪽에는 식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엌일을 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 뒤로도 빛이 비친다. 세 인물과 달리 네번째 인물은 눈여겨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싶다. 그는 식탁 앞쪽의 아래, 무릎을 꿇고 있다. 감동과 완벽한 복종심으로 성급하게 움직이느라 앉아 있던 의자는 뒤로 넘어져 있다. 

빛의 진원지는 예수의 뒤다. 그런데 빛은 예수의 뒤가 아니라 바로 그에게서 나오고 그 강한 빛에 제자의 눈이 밝아지면서 바로 멀어버린 듯하다. 태양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듯이 예수는 빛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보이지 않게 된다. 빛 때문에 어둡게 보이는 예수는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신, 숨은 신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 제자가 온통 그 빛을 받고 있다. 신은 숨고 제자의 내면에 일렁인 전율이 빛으로 부각되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파된다. 빛과 어둠은 제자의 눈뜸과 눈멂, 예수의 현존과 부재를 보여주는 놀라운 장치다. 이 빛은 일상적인 공간인 안쪽의 빛과 다른 빛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빛으로 렘브란트는 지상과 천상, 육체와 정신, 현존과 부재,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구체적인 하나의 육신과 어떤 모습도 가능한 무한한 존재 사이의 대립, 공존, 변환을 암시한다. 벽에는 자루가 하나 걸려 있는데, 이는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의 육신의 자루처럼 보인다. 육신을 벗어버린 예수가 빛으로 어둠을 밝혀주고 있다. 

주제를 드러내는 독특함은 렘브란트가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 화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독실한 칼빈교 신자였다. 전통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던 카톨릭 국가 화가들이 캔버스에 가득 채우던 상징들을 걷어내 버린다. 티치아노, 베로네세, 카라바조가 보여주었던 예수와 제자들이 입고 있던 화려한 옷들,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화, 식탁 위에 차려진 근사한 음식들이 그의 그림에는 없다. 부차적인 볼거리에 관객의 관심이 쏠려서 정작 의도한 주제가 망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감히 세부 묘사를 생략한다. 성경에 충실하게 가장 소박한 배경에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신비와 놀라움’을 체험하게 한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렘브란트의 “표현의 경제성”은 “엠마오” 주제와 놀랍도록 부합한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라이든(Leiden)에서 활동하던 초기 시절인 22세 때이다. 같은 주제를 10여편 그렸음에도 이 그림만큼 누가복음에 나오는 일화를 신비롭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또한 이 작품은 스승인 라스트만(Pieter Lastman)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던 매너리즘 양식(복잡한 구성과 인위적인 색채, 과장되고 장식된 형태로 이루어진 후기 르네상스 양식)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후 그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토대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파리에 며칠 머물 기회가 있다면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은 꼭 가보길 권한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네번째 인물이 보이는지 찾아보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눈뜸’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하르멘준 반 린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1606-1669), ‘엠마오의 순례자들 Les Pèlerins d'Emmaüs’(1628, 캔버스에 유채, 37.4X42.3cm,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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