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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노트] 모두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세상

기사승인 2018.05.08  15: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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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마티스 ‘춤’

마티스는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아방 가르드를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평생에 걸쳐 ‘아틀리에’ ‘창문’ ‘벗은 여인’ ‘바이올린’ ‘금붕어’ ‘춤’ 등을 반복해서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춤’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소재이다. 현재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버전의 ‘춤’ 그림들은 러시아의 한 컬렉셔너가 없었다면 그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슈추킨(Sergueï Ivnovitch Chtchoukine 1854-1936)이다. 그는 직물 사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데다 아버지로부터 아름다운 저택을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미술 작품,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프랑스 작품을 주로 수집한다. 1898년 파리의 화상에게서 우연히 인상주의 작품을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모네, 세잔, 고갱에 이어 마티스, 피카소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아직 그 진가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그가 처음부터 안목이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마티스나 피카소와 같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작가의 작품은 저택에 걸어두고 ‘견디며’ ‘익숙해진’ 다음에 구입을 확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마티스와는 1906년 파리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자주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에, 저택의 계단 위 벽을 장식할 커다란 그림을 주문한다. 마티스는 아틀리에까지 새로 짓고 1년여의 준비과정 끝에 두 개의 그림을 완성한다. 현재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소장된 ‘춤’과 ‘음악’이다.  

그림은 강렬하고 단순하다. 강한 원색인 파랑, 초록, 주홍색으로 투박하게 하늘, 땅, 인간의 몸을 나타내 ‘거대한 채색 평면’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큰 크기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1906년 알제리 여행 이후 이슬람 미술에 깊은 영향을 받은 마티스가 현실의 모사가 아닌 ‘순수 조형 공간’ 혹은 ‘장식’으로서의 회화 개념을 이 거대한 캔버스에서 구현하고 있다. « 나에게 표현은 인물의 얼굴에 드러나는 열정이나 격렬한 움직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몸의 위치, 몸 주변의 빈 공간, 비례, 이 모든 것에서 이루어진다. » 마티스의 말이다. 춤의 격렬함이나 음악의 고요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구성이나 사실적인 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관람객은 그림을 통째로 지각하므로 단순해질수록 표현력은 더 강해진다. 적합한 구성을 찾기 위해 마티스는 ‘춤1’(1909, MOMA, 뉴욕)을 비롯한 밑그림들을 수도 없이 많이 그렸는데, 특히 ‘춤’은 ‘삶의 행복’(1906, 반즈 재단, 메리온)에서 이미 선보인 여섯 여인의 원무(farandole 圓舞)를 차용하고 있다. 길게 늘어뜨려진 몸, 온 몸의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서 오는 디오니소스적이고 파라다이스적인 해방감이 유사하다. 춤추는 사람이 다섯으로 줄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춤이 더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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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몽마르트르의 유명한 무도회장이었던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했다. 그에게 춤은 무엇보다도 몸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자유로움이고 해방감이다. 이는 고전적이고 정형화된 발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으로, 춤을 통해 고대의 자연과 교류하고자 했던 당대의 춤의 혁신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un)이 이러한 춤의 변화를 이끈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던컨이 ‘자연의 춤’ ‘근원의 춤’을 추기 위해 고대 그리스 작품들의 이미지를 연구했듯이, 마티스 역시 당대의 춤뿐 아니라 그리스 화병에 나오는 춤을 보며 가장 원초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스풍 의상에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춤을 추던 던컨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마티스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인물들을 그린다. 문명이나 사회의 흔적은 없이 하늘과 땅만 있는 태고의 자연 속에서 인물들은 춤을 추고, 그들의 흥취가 주홍색으로 표현되어 캔버스에 넘쳐 흐른다. 인물들의 동작은 세련미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고 상스럽고 불완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원시주의’라고 불리는 경향으로, 마티스뿐 아니라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매료되었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예술의 투박함과 단순함의 영향이다. 

슈추킨은 완성된 ‘춤’과 ‘음악’에 난색을 표했다. 현대 미술 애호가인 그조차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색상, 거칠고 서툴러 보이는 형상을 매일 대할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받아들이지만 모스크바에서 이 그림들은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놀림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1908년부터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집을 공개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고, 이 저택은 러시아의 젊은 화가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슈추킨의 컬렉션 없이 라이오노프, 곤차로바, 말레비치가 이끈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혁명 이후 러시아 정부에 몰수되었던 그의 컬렉션은, 오늘날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티스가 ‘춤’에서 표현한,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행복이 실현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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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춤 La Danse’(1910, 캔버스에 유채, 260cmX 391cm, 예르미타시 박물관, 상트 페테르부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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