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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의 미술관 노트]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

기사승인 2018.02.05  16: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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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누아르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프랑스 여배우 오드레 토투(아멜리에 역)가 몽마르트르언덕을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르던 영화 ‘아멜리에’(2001, 장 피에르 죄네 감독).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던 귀여운 여인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직원을 구박하는 야채장수를 골탕먹이기도 하고 사랑에 서툰 두 중년남녀를 맺어주기도 하지만 정작 아멜리에는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 앞에서 도망치기만 한다. 밝아 보이지만 외로운 그녀는 영화 내내 울려 퍼지던 아코디언 소리를 그대로 닮았다. 도대체 행복은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아멜리에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하는 친구로 나온 이웃의 화가할아버지는 아멜리에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부딪혀라,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것은 지나가 버려.” 색감이 아름다워 판타지 같은 영화에서 인상주의 화가의 유명한 그림이 하나 나온다. 화가 할아버지가 20년동안 유독 한 작품만을 공들여 모작하는 그림. 바로 르누아르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다. 

그림에는 테라스에 마련된 식탁 주변에 열네 명의 인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어수선한 식탁이나 편안한 옷차림, 혼자 혹은 둘 셋이 자유롭게 앉거나 서 있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센강에 떠있는 돛단배들, 하얗게 부서지는 햇빛 조각들, 젊은 남성의 건강한 팔뚝, 여인들의 고혹적인 목덜미와 발그레한 뺨에는 청춘의 설렘이 배어 있다. 그림의 앞쪽 왼편에 있는 여인은 붉은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입술을 살짝 내민 채 개를 어르고 있다. 이 여인은 르누아르의 약혼녀로, 화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그녀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보이게 한다. 턱을 괸 아가씨나 머리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있는 여인의 눈길에서는 인생에 대한 한없는 호기심이 보인다. 르누아르의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은 모두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른쪽 뒤편에 있는 검은 옷의 여인은 남자들의 추근거림, 혹은 짓궂은 농담에 귀를 막고 서있는 것 같다. 허리에 감긴 남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걸 보면 투정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은 뭔가를 마시며 먼 곳을 응시한다. 선상의 행복한 공간에서 떨어져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부재 때문에 아쉬워하는 걸까. 소란스러움은 그녀에게서 갑자기 정지되고 불현듯 정적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화가 할아버지가 끝까지 그리길 주저했던 것이 바로 이 여인의 눈동자이다. 여기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있는 듯한 그녀의 시선이 매 순간 다르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여인에 대해 안타까워하듯 화가 할아버지는 사랑 앞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아멜리에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는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는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이행하던 시기의 과도기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와 함께 작업하던 1860년대,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던 1870년대에 르누아르는 야외에서 작업하며 빛에 따른 시시각각의 변화를 유연한 터치로 표현했다. 이때의 걸작이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1877, 캔버스에 유채, 131cmX175cm, 오르세 박물관, 파리)다. 얼굴, 옷, 무도회장 바닥, 나무는 온통 빛점으로 얼룩덜룩하고 인물들은 윤곽선이 거의 없이 빛 아래에서 허물어질 듯하다. 이에 반해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는 보다 정교하게 그려졌다. 빛의 효과가 여전히 잘 나타나지만 형태는 더욱 견고하고, 공간 역시 안정되게 표현됐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고전 예술을 재발견하고, 인상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 결과 르누아르의 화풍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리든, 어떤 양식으로 그리든 그의 그림에 생의 에로스적 에너지와 행복감이 충만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의 감정을 따라 보자. 삶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니 행복은 결코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순간을 놓치면 모든 것은 지난 시절의 빛바랜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정연복 편집위원 www.facebook.com/yeonbok.jeong.75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1880-1881 캔버스에 유채, 129.5cmX172.7cm, 필립스 컬렉션,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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